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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정직한 손

매출이 줄어 종업원 없이 손님을 직접 대하니 현금과 신용카드를 자주 만지게 된다. 코로나19가 겁나서 장갑을 끼면 땀이 금방 차서 벗어버린다. 어쩔 수 없이 알코올이 포함된 손 소독제를 쓰거나 비누로 씻어야 한다. 건조하고 거칠어진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지만 그때 뿐이다.

언젠가 친정엄마가 우리 자매에게 당신의 반지를 끼워보라 하셨다. 자신의 손은 마디가 굵어 반지를 껴도 밉다며 “너희들 손은 곱구나” 하신 생각이 난다. 가족들 뒷바라지에 물 마를 날 없던 엄마의 손은 마른 장작처럼 거칠고 메말랐다. 엄마와 연결된 추억은 항상 뭉클하다. 이제 내가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 손에 어떤 반지를 껴도 예쁘지 않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 칭찬에 고무되어 예고 과장이 운영하는 홍은동 소재 화실을 다닌 적이 있다. 여의도 집에서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는 왕복 2시간 거리라 레슨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초주검이 되었다. 귀신같은 그림 솜씨의 예원중학교 출신에게 주눅 들고 학교 성적도 곤두박질치니 1년 남짓 버티다 포기했다. 그래도 미술에 대한 미련은 남아 딸이 그림에 소질을 보이자 반가웠다. LA에서 두 번 비행기를 타야 하는 로드아일랜드의 미술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내 마음속 딸은 이미 유명화가였다.

작년 여름 한국을 방문해서 화가친구 J의 작업실을 구경 갔다. ‘친구 찬스’로 화랑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다양하게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면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다가 문득 사다리를 보았다. 큰 작품을 할 때 사다리에 올라 장시간 작업한단다. 어깨가 아파 자주 지압을 받아야 한다는 그녀의 마디가 굵고 휘어진 손가락을 보았다. 화가는 창의성을 요하는 정신노동자인 동시에 육체노동자란 걸 깨달았다. 관절이 뻣뻣해지고 통증이 심하다며 “직업병이야” 하고 웃는 그녀를 보고 정직한 노동에 희생한 아픈 손에 경의를 표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조수가 그린 그림에 간단한 덧칠과 사인만 해서 수백 배 수익을 올린 유명 가수 그림대작 사건에 무죄가 확정된 기사를 읽었다. 법적인 문제는 모르겠으나 화가라면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창작의 고통과 기쁨의 시간을 보내며 작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 아닌가. 낮은 중저음의 힘찬 그의 목소리를 좋아했기에 더욱 안타깝다. 헐값에 그림을 그리게 하고 조수를 쓴 것도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것에 실망이 크다. 오늘도 초라한 뉴욕의 아파트에서 고군분투하는 딸과 화가 친구의 아픈 손이 겹쳐져 화가 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는 단순한 진리의 성경말씀을 되새겨보는 아침이다. 정직한 노동으로 마디가 굵어진 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 하느라 양념 냄새에 찌들은 손은 부끄럽지 않고 경건하다. 거칠고 메마른 손을 다정히 잡을 수 없는 이상한 언택트의 시대를 어이할꼬. 코로나야 이제 좀 지친다. 그만 물러가 주렴.


최숙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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