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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자 / 풋힐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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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9/19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20/09/18 18:50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 광장에 적힌 글이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은 시작됐다. 무방비 상태였던 대한민국은 전쟁 발발 3일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25일만에 대전이 넘어간다. 대구와 부산 지방만 남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렸다. 성공한 지금은 ‘신의 한 수’라고 말하지만 당시 성공률은 5000분의 1이었다. 그 위험 부담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시 작전에 동원된 군인 수는 7만5000명, 그 외 수많은 장비 등을 잃을 수도 있는 무모한 작전이라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간만의 차가 심한 곳이다. 썰물 때는 탱크를 위시한 전쟁 장비를 갯벌에 내릴 수가 없어 만조 때만 가능하다. 결국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다.

당시 전시작전권은 유엔군에 있었기 때문에 탈환한 도시마다 미국의 성조기가 꽂혔다. 하지만 을지로 작전을 수행했던 해병대 소위 박정모는 중앙청에 성조기를 꽂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사 3명과 함께 태극기를 품에 숨기고, 아직 적군이 있는 중앙청에 올라가 태극기를 꽂았다. 1950년 9월 26일 새벽이었다.

이로써 적에게 빼앗겼던 수도 서울 중앙청에 인공기가 내려지고 태극기가 게양됐다. 지금도 그때 중앙청에 게양됐던 태극기에는 선명하게 박정모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유엔군 사령관은 이를 백악관에 보고했고 이를 들은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훈장을 보냈다.

중앙청에 태극기가 휘날리던 날 시민들은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을 외쳤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날의 감격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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