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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반죽 밀대와 야구 배트

백종인 / 사회부장
백종인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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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9/2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20/09/22 18:03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한창 날릴 때다. 어느 방송에 출연했다. 문답 중 하나가 짐 얘기다. 원정 경기 때 들고 가는 물건들 말이다.

“그런 것도 가지고 다니나요?” 사회자가 놀란 게 있다. 베개였다. 메이저리거들이 묵는 곳이라면 당연히 최상급 호텔이다. 굳이 챙길 필요는 없다. 그런데 대답은 아니다. “항상 같은 것을 베고 잡니다. 목이나 허리가 뻐근하면 안되니까요.”

하긴. 홈 경기 때 출근길조차도 일정하다. 시간 뿐만이 아니다. 집에서 경기장까지 가는 길, 차선까지도 똑같은 경로를 고집한다. 변수를 줄이기 위한 가장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침 식사는 유명하다. 몇 년간 아내의 카레라이스만 먹었다. 마찬가지다. 생활 패턴과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베개를 들고 다니는 수고쯤이야 별 것 아니다.

원정 경기 소지품 중에 특별한 게 또 있다. 커다란 하드 박스다. 휴미더(humidor)라고 불리는 장치다. 본래 용도는 시가 넣는 캐비닛이다. 정밀한 습도 조절 장치가 내장됐다. 하지만 그에게는 배트 케이스다.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시애틀 시절 함께 뛰었던 조지마 겐지의 말이다. “이치로상의 물건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어요. 배트나 글러브 모두 마찬가지죠. 워낙 귀하게 관리해서 엄두도 못내죠. 한번은 미국 선수가 몰래 그의 배트를 들고 나갔어요. 장난 비슷한 것이었는데, 난리가 났죠. 팀에서는 불문율 같은 거죠.”

그의 배트는 오직 한 사람만이 만든다. 세계적인 용품업체 M사의 장인 구보타 이소카즈다. 정부로부터 ‘명인(現代の名工)’ 칭호를 받았다. 훈장도 여럿이다. 야구계에서는 ‘하나님, 부처님, 구보타님’으로 불린다. 그만큼 모든 선수가 그의 배트를 받고 싶어한다.

그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다.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고객인 오치아이 히로미쓰다. 당대 최고의 타자는 주섬주섬 배트 몇 자루를 내밀었다. “손잡이 부분이 조금 이상해요. 한번 봐주세요.” 일종의 클레임인 셈이다.

“네? 그럴 리가요.” 황망한 손길로 치수를 쟀다. 정확히 0.2㎜ 차이였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 “오치아이상은 이 정도를 손으로 느끼시나요?” 대답이 돌아왔다. “예. 큰 지장은 없지만 그 이상은 곤란할 것 같네요.” 그때부터다. 구보타 명인은 스스로 오차의 한계를 정했다. 0.1㎜ 이내로 줄이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최고 고객은 이치로다. 1년에 약 100개 정도를 공급한다. 그 중 실전용은 40자루 정도다. 명인의 감탄이다. “어떤 선수는 한 경기에도 몇 자루씩을 부러트리죠. 하지만 이치로상은 그런 일이 없어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게다가 관리 또한 철저하죠.” 오죽하겠나. 휴미더를 들고 다닐 정도니 말이다.

진짜 대단한 건 그 다음 얘기다. “대부분 선수들은 수시로 (배트의 길이와 무게 등을) 바꿉니다. 컨디션이나 계절에 따라 요구사항이 많아지죠. 그런데 이치로상은 평생 일정했어요. 그 점이 아주 특이하죠. 많은 고객 중에 그런 사람은 아직 없었어요. 몸에 따라 방망이를 조절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를 늘 배트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명인은 이제 현직에서 물러났다. 은퇴해 직업을 바꿨다. 식당 주인이다. 일본 시가현에 작은 메밀국수 집을 차렸다. 일주일에 딱 사흘만 연다. 그것도 점심 장사 뿐이다. 그런데도 발 디딜 틈 없다. 유명해진 이유가 있다. 반죽을 미는 밀대(면봉·麵棒) 때문이다. 바로 이치로의 배트를 만든 사람이 제작한 면봉으로 뽑은 국수라서다.

장인 정신, 그리고 열정은 업(業)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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