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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현금 좋아하는 민족

[LA중앙일보] 발행 2009/06/25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09/06/24 20:31

이종호/편집2팀장

한국에서 5만원짜리 지폐가 나왔다.

1973년 1만원권이 발행된 이래 꼭 36년만에 최고액권이 바뀐 것이다. 지폐 속 인물은 신사임당. 5천원권에 나오는 이율곡의 어머니다. 그런데 5만원권 유통에 따른 예상 부작용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먼저 축의금과 세뱃돈의 인플레다. 3만원 정도였던 최소 단위가 앞으로는 5만원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뇌물이나 뒷돈 거래의 부담도 더 커지게 됐다. 사과상자 하나를 1만원권으로 채울 때 5억원 007가방은 1억원이 들어가던 것이 앞으로는 5배 씩은 더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습고도 씁쓸한 얘기다.

미국의 최고액권은 100달러 지폐다. 모델은 벤자민 프랭클린. 정치가.외교관.과학자.사상가로 건국의 기틀을 다진 위인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를 볼 일은 별로 많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그 정도 단위의 지폐를 가지고 다닐 일이 많진 않기 때문이다.

9년 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의아했던 것 중의 하나도 100불짜리 고액권은 받지 않는다고 써 붙인 가게를 봤을 때다. 미국인들은 수표나 크레딧 카드를 열심히 사용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20~30달러도 수표로 계산하는 사람들 맥도널드에서 10불도 못 되는 햄버거와 커피를 사고도 당당하게 카드를 내미는 이들은 지금도 자주 본다.

그렇지만 한인들은 다른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제일'이라는 우스개 말처럼 현금 집착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민족이다. 돈은 세는 맛이요 뿌리는 맛이라고 했던가. 급여도 현금을 선호하고 물건값 내는 것도 현금을 더 좋아한다.

단지 세금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간편하고 뒷 탈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현금 거래에 익숙한 자영업자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다.

당장 업소들부터 현금 손님을 더 반긴다. 값도 깎아 주고 서비스도 다르다. 하지만 현금 선호가 지나쳐 아예 카드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한인 타운에서 현금 없이 식사를 하거나 물건을 살 때는 카드 되느냐고 먼저 물어봐야 한다. 괜히 나중에 결제를 못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서다.

타민족에게도 한인들은 현금 소지가 많은 것으로 소문나 있다. 곧 잘 범죄의 표적이 되곤 하는 까닭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업 좀 한다는 사람이면 집에 현금 보관 금고 하나쯤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듣는 얘기다. 수백 수천불 대금도 척척 현금으로 지불하는 이도 한인들이란다.

그렇다고 현금 많이 가진 사람을 색안경 끼고 보자는 말은 아니다. 검은 돈. 구린 돈만 아니라면 카드를 쓰든 현금을 쓰든 상관할 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돈 가진 것을 죄요 악이라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개 경제적 무능력자이거나 시대착오적인 계급론에 빠져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고전 회남자(淮南子)엔 이런 구절이 있다. "도둑질로 잘 사는 사람도 있으나 잘사는 사람이라고 모두 도둑질한 것은 아니다. 또한 청렴해서 가난한 사람도 있으나 가난한 사람이 다 청렴한 것은 아니다."

불황의 골이 깊다. 이럴 땐 소비가 미덕이다. 돈이 돌아야 한다. 카드면 어떻고 현금이면 또 어떠랴. 꽉 막힌 '돈맥경화'를 조금씩이라도 뚫어 준다면 그것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지갑을 더 크게 여는 사람이 애국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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