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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인종차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 모자 '모든 게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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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사입력 2020/09/23 16:03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살기 위해 왔다."

30년 넘게 산 모국인 러시아를 떠나 낯선 한국을 찾은 이유를 묻자 포로시나 옥사나(43) 씨는 이렇게 답했다.

그는 2016년 초 아들 포로시나 션(15) 군과 단둘이 한국에 왔다. 아프리카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러시아에서 인종차별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아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스킨헤드족(극우 민족주의자)으로부터 무차별 폭력을 당하기 일쑤였다. 등하굣길에 마주친 괴한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아들은 입술과 이마 등이 퉁퉁 부어 왔다. 집에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더 이상 러시아에서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옥사나 씨는 고향인 하바롭스크와 1천400km 떨어진 한국행을 선택했다. 아무 정보도 없는 낯선 땅이었지만 아들을 위해서 최선이었다.

이 같은 사연은 2016년 12월 KBS 난민 관련 다큐멘터리에 소개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24일 어느덧 한국 생활 5년 차에 접어든 모자를 만나 그간의 근황과 소감을 들어봤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들의 사연이 다시 화제에 오른 것은 최근 션 군의 근황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올해 서울의 한 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한 의류업체에서 어린이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엄마와 함께 드라마 보조 출연자로 일하면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것이 업체 관계자의 눈에 띄면서 캐스팅 됐다.

그는 "이제는 카메라 앞에 서도 떨리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포즈도 취할 수 있다"며 "즐겁기도 하고 패션에 많이 알게 되는 등 배우는 점이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반 친구들보다 1살이 더 많은 그는 "솔직히 공부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국어와 체육 수업 등 재미있는 과목도 많다"며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친구들을 보지 못해서 아쉽다"고 웃었다.

5년 동안 지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 전부 좋아요. 다 착해요. 친절하고 존중해줘요. 게임도 재미있고, 축구와 농구도 좋아해요. 힙합 음악도 즐겨 듣고요. 서울에서는 한강이 제일 좋아요. 거기서 자전거도 탈 수 있고, 야경이 정말 예쁘잖아요."

모자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낸 이는 션이다.

러시아와 달리 여기서는 욕설과 발길질 대신 미소를 보내줬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모자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따뜻한 관심의 시선도 늘었다.

그는 "사생활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촬영 당시에는 부담됐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방영 이후 많은 이들이 '프로그램 잘 봤다', '힘들지 않느냐', '별 일 없느냐'고 물어봐 줬다"고 말했다.

옥사나 씨는 위축되기만 했던 아들이 한층 밝아진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회계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접고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이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고백했어요. '그래, 우리 여기서 살자'라고 말했죠. 여느 엄마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자식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이니까요."

그러나 한국에서의 정착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7년 정부에 난민 자격 신청을 했지만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 당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과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이유 등을 정리해 재신청했고 다행히 다음 심사에서는 받아들여졌다.

그는 "다만 슬픈 점은 고향을 찾는 게 힘들어졌다는 사실"이라며 "러시아에 있는 부모님과 일가친척을 향한 그리움이 밀려올 때 한국에서의 좋은 기억으로 덮고 살려고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단역 배우를 하면서 동대문 시장과 병원, 눈썹 관리 가게 등을 오가며 수많은 일을 하고 있다"며 "고되긴 하지만 차별이 없고, 더 큰 자유를 가지게 됐다는 점 때문에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션도 "나도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거들었다.

그는 "며칠 전에 24인치 게임용 모니터를 주문했는데 방금 택배가 왔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그래서 지금 더 행복해졌다"며 웃었다.

shlamazel@yna.co.kr

(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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