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Los Angeles

48.0°

2020.11.28(Sat)

[수필] 부족한 한 잎

이광일 / 수필가
이광일 / 수필가
  • 글꼴 확대하기
  • 글꼴 축소하기

[LA중앙일보] 발행 2020/09/25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20/09/24 17:49

잔디가 무리 지어있는 곳에는 클로버가 있었다. 산삼이나 찾아낸 듯 환호하며 네 잎 클로버를 곱게 뜯어 책갈피에 넣고 오랫동안 행운을 유지하고 싶어 수많은 세 잎 클로버를 짓밟던 어린 시절 마포 샛강 둑이 떠오른다.

네잎 클로버가 행운이라기에 젊은이들은 행운을 찾아다니지만 네잎 클로버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행운을 찾아 행복해졌다는 소식보다는 행운을 잡다가 쪽박을 찼다는 불행한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이 나돈다. 며칠 동안 머물던 봄비가 떠나간 앞뒤 뜰에는 꽃나무들이 새 잎을 싹틔우기 시작했고 묵은 잔디 위로는 파릇파릇 연초록 새싹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 틈엔가 멀리 언덕배기에서 마음껏 자리 잡고 살아야 할 클로버와 잡초들이 봄비 따라 몰래 우리 집 잔디밭으로 숨어들어 왔다.

어물어물 지나는 불과 며칠 사이에 잔디보다 더 크고 억센 잎과 곁줄기들로 잔디를 위협하기에 나는 그들에게 퇴거령을 내리고 싸움을 시작했다. 잡초들 중에서도 유독 클로버를 주적으로 삼았다.

클로버가 토끼처럼 번식력이 좋아선지 아니면 토끼가 즐겨 먹어서인지 내 고향에서는 토끼풀이라 불렀다. 클로버는 항상 잔디 뿌리를 물귀신처럼 끌어안고 잔디가 마실 물과 영양을 뺏으며 잔디를 밀어내고 자기와 자식들이 편히 살도록 자리를 넓게 잡는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한번 잔디밭에 들어오면 여간해서는 떠나갈 생각을 하지도 않고 뽑아내려면 잔디를 상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잔디밭 군데군데에 클로버 뭉치가 눈에 띄면 나는 부리나케 부러진 효자손 끝을 갈아 호미처럼 만든 무기를 거머쥐고 싸움터로 뛰어드는 용사인양 클로버 잎사귀와 줄기들을 하나하나 들춰본다. 봄비에 통통하게 살찐 잎사귀나 문어발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는 연록의 줄기들을 젖힐 때마다 원 줄기와 밑동이 드러난다.

나는 성난 신무기를 사정없이 쑤셔 넣어 뿌리까지 뽑아낸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배웠지만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있는 들풀 가운데 유독 클로버를 주적 삼아 싸우고 있다면 그건 앞 뒤뜰 잔디밭을 예쁘게 가꾸기로 한 단순한 나의 선택 때문이다.

요즘은 온 백성을 잘 보살피는 나라들마다 몰래 침투해 사회를 혼란케 하는 무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생에 충실한 사람들 마음속에도 몰래 묻혀 들어와 허접하고 부정적인 잡생각으로 타인의 삶을 갉아먹는 경우도 있다.

클로버를 즉시 제거하지 못하면 마음 밭은 차츰 폐허로 변하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 밭에 클로버가 번식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번식하고 있다면 빨리 뿌리까지 뽑아내어 악하고 부정적인 생각과 나쁜 습관을 과감히 도려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나는 내 마당 안에 들어온 클로버와는 주적 삼아 치열하게 싸우지만 내 마당 밖 마을 자투리땅에서 살고 있는 클로버들과는 절친한 친구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미국 땅에 오고 보니 마치 나 자신이 황량한 들판의 왜소한 클로버가 된 듯싶어 너무도 평범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잎이 한 개만 더 붙었더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클로버들이 내 마당으로만 들어서지 않는다면 세 잎 클로버의 이웃들과 어깨를 맞대고 그들에게 부족한 한 잎을 빌려주며 살기로 작정했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한청수 한의사

한청수 한의사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