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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당해 유산해도 살인죄로 女처벌..엘살바도르 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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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9/29 13:02

중남미 엘살바도르에서 '살인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신디 엘라소(29)가 6년 형기를 마치고 지난 9월 23일 풀려났다. 그가 감옥살이를 한 이유는 놀랍게도 '유산(流産)했기 때문'이었다.




2018년 양부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한 아이를 낙태하려고 했다는 혐의로 엘살바도르에 사는 이멜다 코르테즈(왼쪽)가 재판에 넘겨졌다. 그의 어머니가 코르테즈를 안아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엘라소는 임신 8개월 때 쇼핑몰 화장실에서 유산한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한 상황에서 엘살바도르 당국은 엘라소가 의도적으로 태아를 낙태했다며 가중살인죄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는 엘라소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계속 항의해 온 끝에 겨우 석방이 이뤄졌다.




신디 엘라소(사진)는 유산을 한 뒤 살인죄를 적용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낙태금지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엘살바도르의 법 때문이다.[트위터]





엘라소의 사례처럼 엘살바도르에서는 낙태법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돼 여성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고 일본 출판사인 고단샤의 온라인 잡지 '쿠리에 자폰'이 28일 보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해 6월 취임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39)이 낙태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아직도 18명의 여성이 엘라소와 같은 죄로 복역 중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에선 법적으로 낙태가 엄격히 금지돼 있으며, 설사 임신한 여성이 위험한 상태라도 낙태하면 처벌된다.

보수 가톨릭국가인 엘살바도르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가톨릭 신자로 여성의 낙태에 대해 엄격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1998년 특수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던 법 조항을 아예 없애 낙태를 무조건 금지했다. 이 법에 따르면 여성은 강간당해도, 임신으로 건강이 나빠져서 죽을 위기에 처해도 인위적으로 유산하면 안 된다.


뉴욕타임스는 "낙태 금지관련법을 확대하여 해석된 결과 임신 합병증 등으로 유산·사산을 해도 살인죄가 적용되고 있다"면서 "게다가 불합리하게도 낙태 시술에는 통상 최대 8년의 실형이 내려지는데 유산·사산으로 아이를 잃었을 때의 형기는 30~40년"이라고 보도했다.





엘살바도르의 여성들이 올해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낙태'라고 쓰인 영어 단어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성이 성폭행을 통해 임신한 경우에도 낙태 관련 법 규정이 적용되다 보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에블린 에르난데스 크루즈는 지난 2015년 갱단 단원에 강간당해 임신한 뒤 사산했다. 크루즈는 그 뒤 체포돼 가중 살인죄로 3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재심 결과 증거 불충분으로 지난해 8월에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그때 이미 크루즈는 2년 반 넘게 교도소 생활을 했던 상태였다.




갱단 단원에 의해 강간당하고 유산한 뒤 살인죄를 적용받은 에블린 크루즈를 위한 구명운동이 펼쳐졌다. '에블린을 위한 정의'라고 쓰여진 현수막이 걸려 있다. [트위터]





여성인권 단체에서 일하는 파울라 길렌은 "이런 사건들로 인해 엘살바도르의 극단적인 낙태금지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뿌리 깊게 남아있는 여성 박해 문화가 이제야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17년 엘살바도르 여성들이 낙태 수술을 묘사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극단적인 낙태 금지법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AFP=연합뉴스]





그렇지 않아도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은 여성에게 또 한 번의 고통을 안겨주는 엘살바도르 법 제도에 대해 세계적으로 비판이 거세다. 유엔(UN)도 엘살바도르에 낙태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의회의 대다수를 낙태 반대 성향의 보수파가 차지하고 있어 법 개정은 좀처럼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의회를 통과되지 못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엘살바도르에서 유산·사산으로 살인죄를 추궁당할 때,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농촌 지역 저소득층 여성이 기소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문제의 뿌리에는 사회적 불평등과 여성 차별이 있다"고 지적했다.




엘살바도르 여성들이 지난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 명도 빠짐없이'라고 적힌 표어를 들어보이는 여성들. [EPA=연합뉴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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