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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수] 초짜 변호사, 감히 1심 판결을 뒤집어버리다

[LA중앙일보] 발행 2020/10/15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20/10/14 19:15

남기고 싶은 이야기 - 민병수 변호사
<8> 형사법 변호사로 자리잡다

1980년 한인 커뮤니티 대표로 백악관에 초청받은 민병 수 변호사가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1980년 한인 커뮤니티 대표로 백악관에 초청받은 민병 수 변호사가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경찰 적법성 지적해 승소
인권보호법·판례로 남아

할리우드 유명 변호사도
“이제 진짜 변호사” 칭찬


1983년 LA카운티 수퍼바이저 법사위원회 커미셔너로 임명받을 당시 민병수 변호사가 케네스 한 전 LA카운티 수퍼바이저와 촬영한 기념사진. [사진제공=민병수 변호사]

1983년 LA카운티 수퍼바이저 법사위원회 커미셔너로 임명받을 당시 민병수 변호사가 케네스 한 전 LA카운티 수퍼바이저와 촬영한 기념사진. [사진제공=민병수 변호사]

민 변호사가 형사법 변호사로 입지를 굳히게 된 건 가주 검찰청의 항소로 대법원까지 간 케이스가 계기였다. 캘리포니아 변호사협회에서 발송한 공익변론 참여 공지문을 보고 선뜻 자원했다.

얼핏 사건을 보면 단순 빈집털이가 체포된 케이스다. 1976년 1가와 뉴햄프셔에 있는 4층짜리 아파트 건물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둑이 문이 열린 빈집에 들어가 보석을 훔치다 때마침 그 동네에서 계속 발생하던 도난신고로 순찰을 하던 경찰에게 체포됐다는 게 요점이다. 20대 초반의 라틴계 범인은 순순히 자백했다. 하지만 3년 징역형을 선고받자 형량이 많다며 항소를 원했고, 공익 변호사로 참여한 민 변호사는 항소를 진행하게 됐다.

공익변론 공지문에 자원

“형사법에 따르면 경찰이 안에 들어갈 때 반드시 거주자나 방문자에게 알려야하고, 들어가는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들어갔을 때 위법 행위를 발견하면 체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케이스의 경우 경찰은 진입할 때 노크나 알리지 않았다. 아무리 침입자가 안에서 위법 행위를 하고 있어서 경찰이 조용히 들어갔다고 해도 자칫 총격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웃 주민들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등 위험하다. 침입자에게도 거주자나 방문자에게 해당하는 룰을 적용해야 한다고 항소심 판사들에게 주장했다.”

민 변호사는 “사실 초짜 변호사가 항소심까지 가는 건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만큼 극히 드문 일”이라며 “당시 내게 사무실 방을 빌려줬던 유대인 변호사는 항소심 승리 소식에 ‘당신은 이제 진짜 변호사가 됐다’며 축하해줬는데 그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 변호사가 빌려 쓰던 곳은 미드 윌셔의 빌딩 14층에 있던 해리슨 허츠버그 변호사 사무실. 그의 둘째 아들이 바로 가주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으로 재임하고 있는 로버트 ‘밥’ 허츠버그(65)다. 현재 상원의장인 그는 최근에도 민 변호사에게 선거를 도와달라고 연락할 만큼 막역한 사이다.

민 변호사는 “허츠버그 변호사는 꽤 유명했다. 사무실에는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들이 의뢰인으로 찾아왔다. 그런데도 점심 때면 배심원 재판 이야기를 들려주고 경험을 나눌 만큼 소탈하고 사람이 좋았다. 항소심을 진행할 때도 어떤 증인을 세우고 어떻게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지 꼼꼼히 알려줬다”며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밥(상원의장)은 자주 아빠 사무실에 놀러 왔는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모르는 사이인데도 막 껴안고 친근하게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들려줬다.

상원의장과의 오래된 친분

민 변호사가 이긴 항소심 판결의 파장은 커졌다. 이를 토대로 한 인권 보호법이 생겨나고 주 판례법에도 올랐다. 가주 검찰청은 즉각 대법원에 항소했다. 당시 항고심을 담당한 이는 실력파로 알려진 조이스 L. 케나드 검사로, 그는 2년 뒤 가주 대법원 판사로 임명된다. 1년 뒤에 진행된 대법원 재판은 항소심보다 몇배나 어렵고 힘이 들었다. 9명의 대법원 판사들은 쟁점에 대해 반문하고 판례를 요구했다. 결국 항소심 판결은 뒤집혔다.

민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항소법원의 판결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재판을 진행하면서 느꼈다. 그래서 판결문을 받았을 때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고 가주 대법원 앞에서 좌절했던 심정을 전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다양한 케이스를 맡으며 변호사 초창기 시절을 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인타운에는 음주운전 케이스가 많았고 또 이와 관련된 교통사고 사건도 많았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은 케이스도 6건 정도를 의뢰받았는데 다행히 모두 봉사 등 커뮤니티 서비스로 끝났다.

일반 살인사건 케이스도 꽤 여럿 있지만 민 변호사는 “살인 사건은 공소시효가 없다”며 관련 케이스를 언급할 때마다 단어 하나까지 조심했다.

가정폭력 사태도 비일비재했다. 피해자도 10건 중 1~2건은 남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남자 피해자들은 “창피하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않아서 사건을 조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잘못된 훈육 방식을 고집하다 경찰이나 학교의 신고를 받고 체포되는 부모도 상당히 많았다. 이런 사건의 후유증은 위탁가정으로 보내지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카운티 아동국에 아이를 빼앗기고 되찾기 위해 도움을 구하는 한인 부모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민 변호사는 “형사 사건은 예고된 게 아니고 대부분 우발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영어 구사에 서툰 한인들은 도움받기 쉽지 않았다. 당장 보석금을 못내 구치소에 계속 남아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혼 의뢰도 많았는데 민 변호사는 가능한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조정을 하려고 애를 썼다. 민 변호사는 “이혼하려는 커플들을 설득해 없던 일로 되돌린 경우가 꽤 있었다. 돈은 벌지 못했지만 뿌듯하고 보람을 느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가장 든든한 ‘빽’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자리 잡으면서 점점 바빠졌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 법원에 가야할 때가 생겼다. 이때 가장 든든한 ‘빽’은 아내다. 결혼 후 캐롤 민씨는 남편 못지않게 일벌레가 됐다. 새벽 2시까지 법원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타이핑하고, 법원 스케줄 예약부터 사무실 의뢰인에게 연락하는 일까지 도맡았다.

민 변호사는 “내가 한 일의 절반은 집사람의 공이다. 돈 때문에 뭐라 한 적도 없고 늘 지원해줬다”며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는 꼭 가족들이랑 함께 지내는 걸 철칙으로 삼고 지켰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한인사회는

민병수 변호사가 지미 카터 대통령(1977~1981년)의 초대를 받아 백악관을 방문한 1980년대는 미국 내 아시안 커뮤니티가 본격적으로 성장할 때다. 카터 대통령은 한인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인도 등 각 커뮤니티 대표 100여명을 초청해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아태 자문위원회'를 도입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1989~1993년) 때에도 한인 무역업자 임청근씨를 비롯해 미국 태권도계의 대부 이준구(조지아)씨, 당시 LA한미공화당협회 고문이었던 미셸 박 스틸 OC수퍼바이저, 박선근(애틀랜타) 전국아태공화당협회 재정위원장 등을 대거 자문위원에 임명했다. 이중 스틸 수퍼바이저는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아태자문위로 임명된 최장수 자문위원이자 현재는 공동위원장이다.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는 '아태 자문위원회'이라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를 공식적으로 설치하고 위원장직을 워싱턴주 무역·경제개발국 커뮤니티 국장이었던 한인 마사 최씨에게 맡겨 한인 사회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민 변호사는 "당시 3박 4일 동안 백악관 각 청사를 방문하고 장관급들을 만나 당시 정책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며 "마이너리티였던 한인 커뮤니티의 각종 현안을 주류 정계에 직접 건의할 수 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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