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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수] 인종차별 기사 보고 잡지사 쳐들어가다

[LA중앙일보] 발행 2020/10/20 미주판 6면 기사입력 2020/10/19 19:07

남기고 싶은 이야기 - 민병수 변호사
<9> 본격적인 커뮤니티 봉사활동

1983년 한인변호사협회(KABA) 초창기 모습. 맨 왼쪽이 민병수 변호사다.

1983년 한인변호사협회(KABA) 초창기 모습. 맨 왼쪽이 민병수 변호사다.

1986년 KABA 멤버들이 한미은행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민병수 변호사]

1986년 KABA 멤버들이 한미은행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민병수 변호사]

‘유해한 노란 인종’ 운운 제목
편집국장 만나 정정기사 요구

무료 법률상담에 150명 몰려
지금까지 34년간 이어져 보람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이름이 알려지고 사무실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이다. 민병수 변호사는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한인변호사협회(Korean American Bar Associations·KABA) 설립이었다. 1983년, 남가주 첫 한인 판사로 임명된 케네스 장 변호사(초대 회장), 윤영일 변호사(2대 회장), 민 변호사(3대 회장)가 주축이 됐다. 지금은 회원들이 수백 명에 달하는 명실공히 한인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법조인 단체로 성장했지만, 시작할 때만 해도 회원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도 무료 법률상담을 시작했다.

민 변호사는 “당시 중국계나 일본계, 필리핀계 등 다른 마이너리티 커뮤니티도 각자 변호사협회가 무료 법률상담 행사를 열었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다”며 “70~80년대 한인 커뮤니티는 모두 가난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KABA를 시작하자마자 우리도 무료 상담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불체 신분·건물주의 횡포
그 때도 상담 내용은 비슷


말이 쉽지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KABA 자체가 예산이 없었기에 무료 상담 장소를 빌리는 것도, 홍보하기도 쉽지 않았다. 반대 의견을 내는 회원들도 설득해야 했다. 이때 센트럴 라이온스클럽이 후원단체로 나섰다. 한미은행(당시 정원훈 행장)도 무료 상담 장소로 은행 사무실을 선뜻 개방했다. 민 변호사는 “중앙일보 등 한인 언론에 행사를 알리는 광고를 실었다. 또 한인타운에 있던 청과물상이나 동서식품 등 그로서리 업소, 식당 등을 다니며 행사 안내 포스터를 일일이 붙였다”고 전했다.

1986년, 5월 1일 ‘법의 날(Law Day)’ 주간인 토요일, 한미은행 뒤 조그만 사무실에서 열린 첫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150명이 넘는 한인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당시 자원봉사자로 나온 한인 변호사들은 마이런 김(김명환), 서동성, 김인자, 데이비드 김, 아트 송, 나신명 변호사였다. 법대생이었던 곽철 변호사, 앨런 김 변호사 등은 접수를 도왔다.

가장 많은 상담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민 변호사는 이민법, 건물주와 세입자간의 갈등, 노동법으로 기억했다. 35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 당시 한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법적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점을 보면 이민 역사가 오래돼도 여전히 이민자의 삶이 어렵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땐 불법체류자들이 많아서 영주권 문제로 찾아오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또 불체 신분을 악용해 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착취하는 고용주를 하소연하는 종업원 케이스도 많았다. 또 지금처럼 건물을 소유한 한인들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백인 건물주들의 부당한 횡포에 도움을 요청하는 세입자들도 꽤 됐다.”

이후 KABA는 매년 법의 날 주간에 맞춰 무료 법률 행사를 진행한다. 센트럴 라이온스클럽도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KABA의 행사를 후원한다. KABA는 한인 이민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90년대부터는 LA의 대형 비영리 법률기관인 LA법률보조재단(LAFLA)과 함께 매달 둘째 주 화요일마다 LAFLA 사무실에서 한인 변호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무료 법률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등 활동 폭을 넓혔다.

김영옥 대령이 적극 추천
법사위 커미셔너로 임명


민 변호사는 코리아타운청소년회관(KYCC)의 성장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LA카운티 수퍼바이저였던 케네스 한 수퍼바이저(1952~1992년)의 추천으로 LA카운티 산하 법사위원회 커미셔너로 임명된 민 변호사를 통해 KYCC가 카운티 정부가 지원하는 청소년 프로그램 예산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수퍼바이저가 민 변호사를 임명한 배경에는 고 김영옥 대령의 추천이 있었다. 민 변호사는 “김영옥 대령은 KYCC에 대한 애정이 깊고, 돕고 싶어했다”며 “김 대령의 추천으로 그 자리에 한인이 커미셔너로 뽑힐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변호사는 “당시 KYCC가 받은 지원금은 연간 3만 달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커미셔너로 일한 4년 동안 KYCC가 지원 단체로 선정돼 기금을 받았다. 정부 지원을 받은 첫 한인 단체였기에 뿌듯했고 보람을 느꼈다”고 소감을 들려줬다.

1983년 발족한 한미연합회(KAC)에도 함께 했다. KAC는 한인 커뮤니티의 권익을 보호하고 지도자를 양성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함께 하자는 요청을 받고 초창기부터 2010년까지 이사로 재직했고, 나중에는 이사장까지 역임했다.

KAC 초창기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타임스 매거진 시위다.

80년대에 들어 아시안 이민자가 늘어나는 만큼 인종차별 행위도 갈수록 노골적으로 발생했는데, 타임스 매거진도 메인 표지에 아시안이 미국에 들어오는 그림과 함께 ‘Yellow Peril Invading’ 제목을 달며 노골적으로 인종차별 행위에 맞장구를 친 것이다.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유해한 노란 인종의 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UCLA 법대생이자 KAC 초기 멤버였던 전동수 변호사, 제록스사 엔지니어였던 김기순씨, 서동성 변호사와 민 변호사는 베벌리힐스에 있던 타임 매거진 본사를 찾아갔다. 이들은 편집국장을 만나 정정기사를 내달라고 요구했다. 건물 밖에는 KAC 소속 대학생들이 경찰 허가를 맡고 길에서 소리를 지르며 시위를 벌였다.

“미국에 유해한 게 뭔지 말하라고 따지고 정정기사를 요구하자 편집국장은 ‘아시안 인구가 급증한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상 그들이 선택한 단어는 아시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차별이었다.”

민 변호사는 “우리가 물러서지 않자 편집국장은 한인 커뮤니티 관련 기사를 준비해 쓰겠다는 말로 회유했다. 그 말을 믿고 돌아왔는데 지금까지도 그런 기사는 보지도 못했다. 아쉽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 사건 이후 KAC는 본격적으로 한인 커뮤니티의 권익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80년대 한인사회는…

비영리단체들 속속 등장
이민사회 문제 해결 앞장


1980년대는 덩치가 커져가고 있던 한인 사회를 뒷받침해 줄 커뮤니티 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시초는 KYCC(한인타운 청소년회관)의 전신인 ‘KYC’로, 1975년 LA한인타운 크렌셔 불러바드에서 처음 뿌리를 내렸다.

KYC는 최초 한인 청소년 담당 기관으로, 설립 당시에는 비영리기관인 ‘아시안 아메리칸 약물방지 프로그램(AADAP)’ 산하에 있으면서 이슈가 됐던 청소년 마약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그러던 1982년 한인사회 자체 청소년 단체 설립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독립하게 됐고, 이후 다방면으로 청소년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KYC는 1992년 LA폭동을 계기로 커뮤니티 이슈에 본격 관심을 가지면서 영어 단체명에 ‘Community’를 추가, ‘KYCC’로 변경했다.

지난 1983년 2월에는 지도자 양성 및 권익 신장 등을 목적으로 한미연합회(KAC)가 출범했다.

KAC는 최초로 한인 유권자 등록 운동을 추진해 4만여 명의 시민권 획득과 유권자 등록을 돕는 실적을 냈다.

1983년에는 최초의 여성 변호사 고 이태영 박사와 한인 여성들이 뜻을 모아 한인가정상담소를 설립했다. 여기서는 가정폭력 문제에 초점을 맞춰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현재도 매년 6000명 이상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다.

1986년에는 한인 건강정보센터(현 이웃케어클리닉)가 6가와 하버드에서 클리닉을 개원하며 처음 출범했다.

당시 영어도 서툴고 미국 의료 정보도 부족했던 저소득 한인들의 의료 및 사회복지 혜택 제공을 취지로 설립돼, 2013년에는 미국 내 한인 클리닉 및 비영리단체로는 처음으로 연방정부 인가(FQHC)를 획득하기도 했다.

이후 ‘이웃케어클리닉’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윌셔와 뉴햄프셔에 두 번째 클리닉을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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