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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옷에 직업은 농부···가장 가난한 대통령의 화려한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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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10/23 13:02

[후후월드]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정계 은퇴
대통령 시절에도 농사 지으며 검소한 생활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아" 은퇴 연설


“올 때가 있으면 갈 때도 있는 법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85·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던 그는 재임 기간 소박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퇴임 후에는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는데요. 고령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더이상 활동하기 어려워졌다며 국민에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검소한 생활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린 우루과이 40대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20일(현지시간) 정계 은퇴선언을 했다. 사진은 2019년 멕시코에서 열린 한 강연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프로필에 '농부'라 적는 괴짜 대통령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 싸구려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칼. 무히카의 '시그니처 패션'입니다.

삶도 말 그대로 ‘무소유’였습니다. 2010년 취임 당시 그의 재산은 현금 1800달러(195만원),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한 대와 허름한 농가, 그리고 농기구 몇 대가 전부였습니다. 가족도 단출합니다. 자녀는 없고, 우루과이 첫 여성 부통령인 아내 루시아 토폴란스키(75)와 다리 하나를 잃은 반려견 ‘마누엘라’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무히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늘색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무히카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 낡은 자동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했다. [AP=연합뉴스]





재임 기간에는 월급의 90%를 기부했고, 관저는 노숙자에게, 별장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내주었습니다. 정작 대통령인 자신은 쓰러져가는 시골 농가에 살며 낡은 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재임 기간에도, 또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은 우물에서 길어다 쓰고, 빨래도 직접 합니다. 마당에는 무히카 부부가 오랜 기간 가꾼 꽃과 화초가 무성하고요. 무히카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프로필에 ‘농부’라고 적었다네요.

이런 그를 전 세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하수구를 누빈 ‘로빈 후드’



무히카(왼쪽) 와 그의 부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우루과이 부통령. 두 사람은 1970년대 함께 도시 게릴라 조직에사 무장반군으로 활동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토폴란스키는 2017년 우루과이의 첫 여성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EPA=연합뉴스]





1935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무히카는 어릴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8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과 함께 꽃을 팔아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죠.

하지만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뒤 ‘도시 게릴라 운동가’로 변모했습니다. 1962년 도시 게릴라 조직 투파마로스 인민해방운동(MLN-T)에 합류해 무장반군이 됐습니다. 하수구를 거점으로 게릴라 투쟁을 벌인 탓에 사람들은 그를 ‘로빈 후드’라고 불렀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뒤에는 교도소 땅굴을 파 두 번이나 탈출한 ‘탈옥수’로, 또 37살에 투옥돼 14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기수’로도 기록됐죠.

석방된 뒤에는 정계에 투신, 1994년 게릴라 출신의 첫 하원의원으로 선출됐습니다. 이후 1999년 상원의원을 거쳐 2005년 농축수산부장관을 지냈고요. 2009년 11월 대선에서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 후보로 나서서 우루과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무히카가 2019년 우루과이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 당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무히카는 대통령 퇴임후에도 상원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현지에서는 무히카의 무장반군 이력을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무력 투쟁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생겼다는 비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무히카는 감옥 생활 얘기를 거의 꺼내지 않습니다. 지난 2013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도 “투옥 생활은 반성의 시간이었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혁명이란 사고의 전환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실용주의 정책으로 우루과이 정치·경제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가 마리화나(대마초) 합법화입니다. 정부의 통제 안에서 경작·유통을 허용해 마약범죄를 끊어내자는 취지였죠. 찬반이 극렬히 갈렸지만 무히카는 단호했습니다. “억압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주장이었죠.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사업에 남몰래 거금을 기부한 일화도 유명합니다. 서민주택 사업이 정권 막바지까지 반대에 부딪히자 그는 재임 기간 내내 월급 일부를 이 사업에 내놨다고 뒤늦게 밝히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무히카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상원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지난 7월 무히카(오른쪽)가 자신의 시골집에서 우루과이 외무장관 프란시스코 부스티요와 외교정책을 논의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내 월급을 보내서라도 서민주택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는 진솔한 고백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또 총소득세 정책을 통한 조세개혁은 빈곤 감소와 성장률 제고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유럽발 경제 위기에도 우루과이는 매년 평균 5.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치를 존중한 정책으로 국민의 ‘책임감 있는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그의 퇴임 직후 지지율은 65%로, 취임 직후 지지율인 52%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라시아스, 페페”
무히카의 매력은 탈권위적이고, 친근하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입니다. 이런 그를 우루과이 국민은 “페페(PePe)”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




20일(현지시간) 우루과이 의회에서 정계 은퇴선언을 한 뒤 자리를 떠나는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의 뒷모습. 무히카는 고령에 코로나19까지 덮쳐 정치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며 정계 은퇴를 결정했다. [EPA=연합뉴스]





2012년 유엔 지속 가능한 발전 정상회의에선 자신의 철학을 특유의 소박한 언어로 설파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그는 “갚고 또 갚고, 할부금을 다 갚을 때쯤이면 이미 노인이 되어 있고, 인생이 끝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인가 묻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루과이 국민들은 SNS에 무히카의 의회 마지막 연설을 기록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우루과이 중도연합당 프렌테 암플리오 트위터 캡처]





은퇴 연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수십년간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생의 큰 교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성공은 승리가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젊은이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남긴 마지막 연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자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렇게 작별인사를 달았습니다.

“그라시아스(고마워요), 페페”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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