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Los Angeles

66.0°

2020.11.25(Wed)

그림의 대화가 주는 미묘한 울림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 글꼴 확대하기
  • 글꼴 축소하기

[LA중앙일보] 발행 2020/10/26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20/10/25 11:23

[전시 리뷰] 박다애·데이비드 에딩턴 2인전

서로 다른 두 작가의 깊숙하고 세심한 대화가 흥미롭다. 그림의 세계이기에 그 대화의 울림은 한결 미묘하다.

‘샤토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다애, 데이비드 에딩턴 2인전은 그런 ‘다름’과 ‘같음’의 대화로 꾸며져 있다.

‘존재에 대한 두 개의 은유’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전시는 전혀 다른 두 작가의 존재(being)에 대한 은유적 대화를 중심으로 한다. 대화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 오가는 것이다. 같은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 없다. 그러니까 대화란,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그 다름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날카롭게 부딪치기도 하고 진하게 어울리기도 하면서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대화의 묘미다. 예술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우리의 흥겨운 풍물 장단과 재즈의 어울림이나 가야금과 기타의 협연 같은 것이 주는 울림은 서로 다른 것이 부딪치고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다.

박다애와 데이비드 에딩턴은 매우 다른 배경을 가진 작가다. 한국 여자와 영국 남자, 동양과 서양, 한국어와 영어, 조형미를 추구하는 순수 추상화와 상징성 강한 구상화 등으로 대조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LA라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의 같은 공간에 살면서, 그림을 통해 존재를 고민하고 표현하는 화가로 상호 섬세하게 호응하고 대응한다.

두 작가는 그동안 몇 차례 그룹전을 같이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각자의 문화적 핵심 요소를 반영하고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서로 대응해 나가면서 각자의 심상을 표현할 창조적인 방식을 마련한다고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작품을 통해 공감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것이다.

표현 형식에서도 두 작가는 매우 다르다. 박다애의 작품은 순수 조형미를 추구하는 추상화(단색화)인데 반해 데이비드 에딩턴의 그림은 다양한 형상을 통해 존재를 은유하는 구상화 작품들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작품사이에 묘하게 비슷한 온도와 분위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의 형식은 대조적이지만, 존재에 대한 본질적이고 형이상학적 의문을 그린 ‘내면 풍경화’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왜 그리는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의 근본적인 고민도 진지하게 공유한다. 한 사람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다른 한 사람은 상징적인 이야기로 풀어가지만 말하려는 것은 같다.

두 작가가 자신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데이비드 에딩턴이 르네상스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같은 서양미술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 이 시대의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박다애의 작품은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선불교의 명상과 맥이 닿아있다. 데이비드의 그림이 자유로운 반구상의 일기(日記)같은 것이라면, 박다애의 작품은 명상적 고백이나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다른 두 작가가 ‘존재의 탐구’라는 작업에서는 거의 같은 시각을 보여준다. 전통의 끝에서는 ‘존재’라는 문제를 만나게 된다.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모든 만물이 큰 틀에서 보면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시각, 그리고 그것은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서로 공감하며 통한다.

두 작가는 전신적 교감에 그치지 않고 이 전시회를 위해 서로 주고받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적극성도 보여준다.

이미 말한 대로, 이 전시회의 매력은 서로 다른 것이 부딪치고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대화의 소통과 조화를 함께 공감하는 즐거움이다. 단순히 두 작가의 작품이 같은 공간에 전시된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관련기사 문화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조앤 박 재정전문가

조앤 박 재정전문가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