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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우먼 인 할리우드’의 삶

“입사 초기에 저는 ‘미스 심’으로 불렸어요. 회사 임원이 헤드록을 건 적도 있고 면전에서 심한 성희롱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 같으면 소송감이지만 그때는 그냥 넘어갔어요. 정색하고 따지고 들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사실 저 스스로도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시절이었죠.”

영화제작자로 이름난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올여름 출간된 ‘영화하는 여자들’에 실린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요즘 젊은 세대라면 ‘미스 아무개’에 담긴 차별적·비하적 뉘앙스는커녕 이런 호칭 자체가 낯설겠지만 과거에는 젊은 직장 여성을 두고 당사자가 싫든 말든 종종 쓰이던 호칭이다.

알다시피 심 대표는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 개론’ ‘카트’ 등 숱한 화제작을 만들어낸 주역인데 1980년대 후반 극장의 홍보직원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여성을 전문 인력으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는 얘기다.

여성에 대한 처우라면 할리우드라고 크게 나을 건 없다. 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에도 소개된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 나탈리 포트만, 클로이 모레츠 등 스타 배우가 쏟아내는 얘기를 들으면, 여성에 대한 장벽은 할리우드가 더 굳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150여명이 모인 촬영현장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다거나, 15세 나이에 가슴이 커 보이는 보정물을 속옷에 넣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거나, 지금까지 함께 일해본 여성 감독이 단 두 명인데 그중 하나는 연출을 겸한 배우 자신이었다거나 하는 경험담이다.



특히 연출은 장벽이 높다, 역대 아카데미 감독상은 수상자 가운데 여성은 ‘허트 로커’의 캐서린 비글로우 단 한 명이다. 여성 감독이 그만큼 적어서일까. 힐러리 스웽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킴벌리 피어스처럼, 성공작을 만들고도 차기작 연출 기회를 잡기 힘들었던 여성 감독이 알고 보면 한 두 명이 아니다.

‘델마와 루이스’의 스타 지나 데이비스가 제작한 ‘우먼 인 할리우드’는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일례로 미국 TV시리즈 연출자의 성별과 인종이 ‘백인 남성’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방송사마다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는 보도가 나오자, 여성 연출자의 비중을 남성과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린 방송사와 경영자가 등장한다.

세상은 달라진다. ‘미스 심’ 시대와 견주면 ‘영화하는 여자들’에 인터뷰가 실린 영화인 20명의 면면은 격세지감을 부른다. 제작·연기·연출·편집·촬영·미술·마케팅 등 분야도 다양하고 저마다 경험도 풍부해 각자의 얘기에 90년대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과거와 현재가, 그동안의 변화가 자연스레 묻어난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못지않게 흥미로운 ‘영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후남 / 한국 중앙일보 문화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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