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시론] 선거인단 제도의 겉과 속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명분을 살려 실리를 취한다.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선택했을 때는 대통령 없이 의회만 있었다. 그 후 하나의 나라는 한 사람이 이끌어 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아 1789년 10개 주에서 선출한 69명의 선거인단이 만장일치로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미국은 국민이 주인인 각 주가 합쳐서 만든 왕이 없는 연방 공화국이다. 개개의 시민도 중요하고 하나로 뭉친 나라도 중요하다는 명분을 세웠다. 하지만 200여년 전에는 여성과 흑인은 문맹이 태반이었고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신생 주들이 들어오면서 교통과 통신 문제로 모든 국민이 한꺼번에 하는 직접선거는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고도 가장 복잡한 선거인단 제도인 것이다. 즉, 각 주에서 인구 비례에 따라 일정 수의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그 선거인단이 모여서 대통령을 뽑는 것인데 선거인단은 국민이 투표한 정·부통령의 득표 수에 의해 결정된다.



선거인단은 정당에서 열성 당원을 지명하므로 나중에 배신 당할 염려는 거의 없다. 다만 연방헌법 제2조는 선거인단 선출방식을 각 주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주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는 축제의 성향이 짙다. 예비선거나 전당대회 때 거창한 배너와 악대 등을 동원해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 의식을 고취시킨다. 마치 로마 장군의 개선식을 답습한 것 같다. 반면에 개선 장군이 시민에게 칼 뿌리를 되돌리지 못하게 무장해제를 시키는 것처럼, 선거 후에도 여러가지 까다로운 격식과 배수진을 쳐 놓아서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선동 때문에 지도자가 뽑히는 것을 극도로 억제해 왔다.

한 마디로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우매한 백성’을 못 믿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에서 크롬웰이 찰스 왕을 죽이고 프랑스 혁명 때 수많은 정치인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나 대를 물려받을 정치인들에게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기에, 아테네의 몰락을 예로 든 플라톤의 ‘중우정치(mobocracy)’를 민주주의의 큰 걸림돌로 생각했다.

현행 선거인단 제도는 연방국가의 골격 유지·양당제 유지·도시중심 방지·부정선거 방지 등의 장점도 있으나 다수의견 무시·불필요한 복잡성·투표율 하락·경합주에 치중 등의 단점이 있다. 이와 같은 비민주적이고 비경제적인 제도를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로 바꾸자는 제안이 가끔 있었으나 대부분의 정치인은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심지어는 앨 고어와 힐러리 클린턴이 전체득표에서는 이겼으나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해 정권을 ‘빼앗겼던’ 민주당에서도 별 말이 없다.

겉으로는 전통을 존중해서라고 하지만 속셈은 정치의 칼자루는 정치인에게 맡기라는 무언의 시위이다. 가재는 게 편이듯 정치가들은 정치가들 편이다. 그들은 일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 놓아야 계속 밥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너나 나나 다른 일로 눈코 뜰새 없으니까 좋든 싫든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이원택 / 정신과 전문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