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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승복의 민주주의 전통

2000년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때 미국 뉴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후보가 격돌했던 선거다.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면서 두 가지 기사를 준비했다. 부시 후보가 이기는 경우와 고어 후보가 승리하는 경우. 개표가 시작되면서 선거판세는 요동쳤다. 부시가 우세를 보이면 부시 기사를 보완하고 고어가 앞서면 고어 기사를 다듬었다. ‘당선자 미확정’ 기사는 준비하지 않았다.

플로리다주가 문제였다. 박빙 판세에서 플로리다 선거인단이 누구에게 가는가에 따라 승자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고어가 전국 득표수에서 앞섰지만 플로리다에서 패배해 부시에게 전체 승리가 돌아갔다.

선거 당일 자정을 넘긴 시간에 CNN과 뉴욕타임스 등 대부분 언론은 ‘부시 당선’ 속보를 냈다.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오보다. 하지만 이후 계속된 플로리다 개표에서 두 후보 표차가 537표로 좁혀졌다. 득표 차가 총투표자 수의 0.5% 이내일 경우 재검표를 해야한다는 주법에 따라 ‘부시 승리’는 보류됐다.

고어는 투표용지 오류 문제를 제기했다. 펀치로 투표용지의 구멍을 뚫어 지지후보를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부시 당선’ 기사를 쓰고 자정 넘어 퇴근했다가 다시 신문사로 돌아왔다. 새벽 3시쯤이었다. 당선 기사를 내리고 ‘혼돈의 대선’으로 기사를 수정했다. 우편으로 배달되는 신문은 ‘부시 당선’으로 인쇄됐지만 아침 시간에 가판에 배포되는 신문은 오보를 피했다.

당시 선거는 끝났지만 승자는 정하지 못했다. 재검표와 수작업 재검표, 법정시비가 이어졌다. 결국 대법원의 판결에 고어가 승복하면서 36일간 끌었던 대선 승패는 결정됐다.

2020년 대선은 20년 전 선거를 연상시킨다. 4일 현재도 일부 경합주는 예측 불가의 상황이다. 각주 우편투표자의 개표가 시작되면서 결과가 언제 확정될 지 알 수 없다.

4일 새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선거 승리를 공표했다. ‘우리는 크게 이겼다’는 승리 발표다. 또한 백악관 이스트룸 회견에서는 우편투표를 ‘사기투표’로 규정하면서 “연방대법원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합주 우편투표 개표로 바이든 후보에게 역전을 허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조 바이든 후보도 4일 경합주에서 트럼프에 앞서자 사실상 ‘승리 선언’을 했다. 바이든 후보 측은 선거인단 과반 확보가 기대된다며 승리를 예상했다. 개표 초반 트럼프 대통령이 우위를 보였던 미시간과 위스콘신이 바이든에 기울고 펜실베이니아주 격차도 좁아들면서 승리에 대한 자신감은 커졌다.

2020년 대통령 선거는 혼돈의 연속이다. 선거인단 270명 확보를 위한 치열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거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해 온 트럼프는 일부 경합주에 대해 재검표와 개표 중단 소송을 제기했다. 2000년 선거의 재검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승복의 전통이 있다. 선거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후보들도 일단 선거 결과가 발표되면 상대 후보를 인정한다.

20년 전 고어는 대선 승복 연설에서 “지금은 서로를 차이를 앞세워 분열하기 보다는 화합이 필요한 때”라며 “승자와 패자 모두가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미국 정치의 전통”이라고 했다. 미키 에드워즈 전 공화당 하원의원도 “하나의 미국 만드는데 중요한 사람은 승자가 아니라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패자”라고 했다.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지만 결국은 미국민으로 하나가 된다. 미국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격렬한 비방과 끝없는 막발로 점철된 이번 선거가 승복의 전통까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김완신 논설실장 kim.wanshi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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