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55.0°

2020.04.09(Thu)

[오픈 업] 자폐증 소녀와 부모

[LA중앙일보] 발행 2009/07/24 미주판 23면 기사입력 2009/07/23 20:44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제니는 14살의 백인 소녀이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가 있어서 걷지를 못한다. 늘 휠체어에 앉아서 누가 밀어주어야 한다. 게다가 심한 자폐증이 있어서 전혀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을 피한다. 2년 전에 우리 클리닉을 방문했을 때에는 너무나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어서 아버지가 데리고 나가 있어야 했다.

제니의 아버지는 훌륭한 내과 의사이다. 소아과 전문의인 엄마의 말에 의하면 제니의 언니나 밑의 남동생은 모두 건강하다고 한다. 임신과 분만 과정이 모두 순조로왔다고 했다. 다른 많은 자폐증 환자들처럼 원인을 알아내기 어려운 두뇌의 질병을 갖고서 태어난 셈이다.

제니가 올 때 나는 건물 밖 주차장으로 나간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차 속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소리를 지르지 않으니까. 걸핏하면 가족들의 얼굴을 할퀴고 물기 때문에 반드시 안전벨트를 매고 있다.

자동차 밖에서 아니면 앞자리에 앉아서 나는 제니에게 인사를 한다. 악수도 하이 파이브도 잘 모르더니 1 2년이 지나면서 악수하는 내 손을 뿌리치거나 물지 않는다. 화를 많이 내고 공격적인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지난 달에 처방했던 아비리화이(abilify)라는 정서 안정제 겸 항정신제는 부작용이 있었다는 게 아버지의 말이다.

"언어 치료사 말에 의하면 제니가 그 약을 쓴 후에는 입을 꼭 닫고 열려고 하지를 않았대요."

항정신제의 부작용인 근육 강직 현상이 왔었는지도 모른다. 말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폐증 환자이니 약을 끊었는데 근육 상태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단다.

"오늘은 다시 한 번 사무실 안에 가서 얘기하면 어떨까요?"

오랫만에 휴가를 내어서 같이 온 아빠의 청이다. 첫 방문시의 퇴행된 행동보다는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기대했으리라.

"제니에게 바람도 쏘이고 운동도 시킬 겸 제 사무실로 가죠." 14살이지만 7 8세 정도의 발육 상태를 보이는 제니를 아빠는 번쩍 안아서 커다란 보행기에 앉혔다. 보행기에 앉아서는 계속 아빠의 손을 끌어 당기려 안간힘을 쓰는 딸을 아빠는 웃는 말로 격려하며 승강기까지 왔다.

제니의 양 옆으로 나와 엄마가 서 있었다. 승강기 안의 모든 시선이 제니에게 쏠리고 낯선 것을 싫어하는 제니의 울부짖음이 시작되었다. 나의 사무실에 들어와서 그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느 의사의 진료실에 가서도 소리를 지르고 싫어한다면서 의사인 두 부모는 마주보며 웃는다. 한숨이나 눈물을 흘리기에는 앞으로가 더욱 더 큰 시련일테니 웃음으로 아이를 키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말을 타러가는 날에는 아주 기뻐하지요."

어떤 식으로 도와주어야 할지를 몰라서 생각에 잠긴 나에게 위로하듯이 엄마가 건넨 말이다. 하지가 마비된 이 환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승마 학교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자폐증 환자 부모들의 끝없는 인내심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이 부부는 일주일 내내 환자를 보며 치료한다. 친정 부모가 제니를 보아주지만 주말이면 부부가 아이를 돌본다. 이들에게는 주말이나 휴가가 없는 셈이다. 오늘같이 큰 아이가 방학을 하면 부모도 휴가를 받아서 건강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그러나 제니에게서는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니 일이 더욱 많아지는 휴가이다. 이들은 그래서 순간 순간을 감사하며 지낸단다.

그러면서 기다린다. 제니가 엄마 또는 아빠라는 말을 하는 날을. 부모의 눈을 바라다 보면서 한 순간이나마 웃는 날을.

그래서 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다음 약속 시간을 정한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황세희 박사

황세희 박사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