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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맙습니다 조 바이든 씨

유자효 / 시인
유자효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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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11/21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20/11/20 18:12

6·25 전쟁이 끝난 이듬해,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는 미군이 막사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산비탈 천막 교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장통을 지나야 했습니다. 전국의 피란민들이 뒤섞여 함께 살았던 그때의 부산은 무척 무질서했습니다.

차선 표시도 있을 리 없는 시장바닥을 지나가던 미군 지프가 앞에 가던 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프는 넘어진 저를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워낙 작아 다행히 양쪽 타이어 가운데 넘어져 있었습니다. 지프가 급정거했습니다. 미군 몇 명이 황급히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저는 발딱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옆 머리에 피를 흘리며 울면서 달리는 아이와 그 뒤를 쫓는 미군들의 기묘한 달음박질이었습니다. 헐떡이며 집에 들이닥치자 마침 마당에 있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저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때 미군들이 뛰어 들어왔습니다. 할머니는 큰 소리로 미군들을 마구 꾸짖었습니다. 한국말로···. 미군들은 할머니께 상황을 설명하려 애썼습니다. 미국말로···. 그것이 저와 미국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뒤 20년, 방송기자가 된 저는 미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그때의 미국은 말 그대로 자유의 천지며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뉴욕항에서 맨 처음 만나는 자유의 여신상은 이민자들에게 드디어 풍요의 신천지에 도착했다는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열어갔습니다. 노력만 하면 성취가 따라왔습니다.

그랬던 미국이 변한 것은 2001년 9·11테러 이후입니다.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엄청난 사태 이후, 보복에 나선 미국은 이라크전을 일으켰고, 외국인이 미국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까다로워졌습니다. 미국 내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의 미국이 사라진 것입니다. 양극화가 심화되기 시작했고, 불신이 깊어졌습니다. 폭력 시위가 빈발하는 지역에서는 집에 총기를 비치하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 치안도 과거와는 달라졌습니다.

2017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45대 대통령의 등장은 달라진 미국을 확연히 느끼게 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구호로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민주주의 이념을 수호하는 세계 경찰국가 미국은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방위비를 대폭 올려주지 않으면 군대를 빼가겠다는 야속함이 맹방을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저는 판문점 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기다리던 트럼프 대통령이 “My Friend”라고 중얼거리던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고모부와 이복형을 처참하게 죽인, 수용소 군도와도 같은 병영 세습왕조 북한의 독재자가 어떻게 미국 대통령의 친구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었습니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피해국이 되고 대통령 자신이 환자가 되는 상황에서도 군중 속에서 거침없이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46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하는 것을 보며 저는 “동맹을 돈으로 팔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미 재향군인의 날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았으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 동맹을 재확인했습니다.

또한 대통령에 취임하면 제일 먼저 파리 기후협약에 가입하겠다는 데 안도했습니다. 지금 인류의 최대 과제는 지구 온난화의 해결입니다. 극지의 얼음이 녹고 북극곰과 펭귄이 죽어가는데 인간만 살아남으리라는 낙관론은 있을 수 없습니다. 탄소 연료의 감축에 초강대국 미국의 솔선수범은 절대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 선거 주장과 불복으로 미국의 분열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이 유럽 주요국 정상과 연쇄 통화를 갖고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밝히는 데서 저는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의 미국이 살아나고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세계 자유 진영의 지도국으로서의 면모입니다. 거인 미국의 참모습이 부활하는 것을 보는 감격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 바이든씨, 여든 살을 앞두고 대통령에 당선해서 고맙습니다. 뒷방으로 들어가려던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 다시 주춤주춤 마당으로 내려서게 했습니다. 100세 시대, 노인은 아름답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줘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딸·아들을 먼저 보낸 참척(慘慽)을 겪고도 끝내 일어선 당신의 인간 승리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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