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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여성 ‘디아스포라’로 산다는 것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다인종, 다문화의 국가 미국은 디아스포라의 나라다.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유대인들이 제 나라 땅에서 바빌론으로 유배갔던 것처럼, 원래 타의적이고 강제적인 의미의 이동을 뜻한다. 하지만 현대 디아스포라는 능동적 의미가 있다. 인종차별이 큰 이슈로 부상한 지금 미국 생활 45년을 뒤돌아본다. 아시아의 작고 가난한 나라 출신이기에 나를 깎아내리는 표현이나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무심해서, 아니면 기억하면 기분 상하니까 애써 잊으려고 무의식의 세계로 기억을 보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거의 아픈 상처나 기분 나쁜 일을 본능적으로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억함으로써 다시 아프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자가 방어일지 모른다.

미국인들은 상처받아 아픈 기억이 남아 있을 때 들먹이지 말라고 ‘Do not go there(거기에 가지 마)’라고 표현한다. ‘간다’라는 능동적인 동사를 쓴다. 기억이란 나의 능동적인 뇌의 활동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자신을 방어하는 메커니즘의 하나로 기억을 스스로 없애는 것과 기억을 어떤 곳에 가두어 두는 것을 ‘자의적 기억상실’이라 부른다. 좋은 예로 남자의 경우는 전쟁으로 인한 힘든 기억, 여자들은 만성 성적 학대나 강간으로 받은 외상성 트라우마를 들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을 잊음으로써 아픔을 극복하고 힐링의 길을 찾으려는 은연 중의 노력이라고 보면 된다.



나의 미국 생활도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기억상실 상태이니 말이다. 그런데 왜, 무엇이 그리도 아팠을까?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를 통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인종차별이 그때에는 더 심했을지 모른다. 흑인뿐 아니라 한국 이민자도 또 다른 아시안도 모두 겪었을 것이다.

3주 전에 미국 흑인(AA)과 한국계 미국인(KA)들이 백인 주류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부딪치며 겪어 온 역사를 뒤돌아보는 콘퍼런스가 있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가 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이 후원한 제28회 ‘한무숙 한인 인문학 콜로키엄’에서 ‘증오(enmity)에서 공감(empathy)’이라는 제목의 토론이었다. 사회학 분야의 백인, 흑인, 한국 출신의 강사들이 참여했다. 한무숙은 한국 문학을 대표했던 문인으로 고인이 된 지 이미 사반세기가 지났다. 콜로키엄이란 여러 사람이 토론에 자유롭게 참석하는 형태의 미팅을 뜻한다.

콜로키엄에 줌으로 참석하면서 다시금 현대의 디아스포라들이 겪어 온 어려운 삶을 보았다. 특히 여성 디아스포라의 노고에 관심이 갔다.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여성 디아스포라는 이민와 살면서 남성보다 더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부당한 차별과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열정과 노력으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개척해 왔다. 미주의 모든 여성 디아스포라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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