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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 울면 엄마도 울고 저도 울었죠”

[올드타이머의 뉴인터뷰] 한인 소아과 대부 홍성진 박사

선교지에 가서 소아를 진료중인 홍 전문의와 부인 홍춘주(서있는 여성) 여사.[홍성진 박사 제공]

선교지에 가서 소아를 진료중인 홍 전문의와 부인 홍춘주(서있는 여성) 여사.[홍성진 박사 제공]

매년 의료선교에 나선 홍성진 박사가 열악한 의료 환경에 처해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방문했다. 현지 어린이와 이슬람 고유의상을 입은 엄마들에 둘러 싸여 있는 홍박사의 모습. [홍성진 박사 제공]

매년 의료선교에 나선 홍성진 박사가 열악한 의료 환경에 처해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방문했다. 현지 어린이와 이슬람 고유의상을 입은 엄마들에 둘러 싸여 있는 홍박사의 모습. [홍성진 박사 제공]

어린이 환자 42년간 3만명
'가와사키' 진단으로 유명
"한인타운 진료 그만두지만
하이티에 병원 세우는 중"


1979년에 한인타운에서 클리닉을 시작한 홍성진(74) 소아과 전문의가 지난 9월30일 42년만에 은퇴했다. 개업의로서는 은퇴했지만 의료선교로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된 홍 박사를 만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홍 박사의 자택을 방문해 안전거리 밖에서 인터뷰했다.

‘홍소아과’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지는 환자 차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총 2만5천개가 쌓였다. 차트는 개인별이 아닌 가족별로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3형제인 가정의 차트 번호가 1122번이라면, 1122-A, 1122-B, 1122-C 이런식으로 붙여져 대략 3만 명의 어린이 환자를 만났다. 이것도 ‘홍소아과’에서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와 10년간 새 환자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환자가 있었지만 홍 박사는 1번 차트의 주인공을 헬렌 박 어린이라고 또렷히 기억했다.

#개업



홍 박사가 한인타운에 처음 개업한 1979년에는 이인숙, 김원철 소아과만 있었을 때였고 그가 LA아동병원(CHLA)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선배인 주명식 산부인과 전문의가 자신의 클리닉에 공간을 하나 마련해주며 진료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 시작이다. 불과 6개월만에 환자들이 몰려와 산부인과 클리닉에서 쫓겨나고(?) 어쩔 수 없이 개업했다.

소아과 의사가 귀하던 시절이라서 LA전지역은 물론, 멕시코 티후아나에서부터 베이커스필드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환자들이 찾아왔다. 젊은 홍 박사는 아침과 저녁으로 4~5곳의 병원을 회진하고 오후 7시까지 진료하는 강행군을 감래했다.

그러면 ‘홍소아과’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소아과를 선택한 이유를 묻다가 그 답을 찾았다.

“어린이들은 ‘나는 운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봐요. 저는 어렸을 때 한국전쟁 후 고통받는 고아들을 불쌍히 보았고, 특히 그 아이들 울음소리를 민감하게 들었고 안타까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소아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울음이 마치‘날 울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같아서요.”

홍 박사는 “한인 타운 소아과 의사로서의 보람은 출생의 기적과 성장의 비밀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와 치유하심을 믿을 수 있었다”며 “한인 어머니들의 모성애를 항상 접해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이 몰려온 이유가 어린 환자나 부모들에게 친절해서 아니다. 오히려 홍 박사는 무서운(?) 소아과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아이도 아픈데 소아과 선생님에게 혼(?)까지 나니 엄마가 참다가 억울해서 울기도 했다. 엄마들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안도의 위로를 원했는데 홍박사는 따끔하게 면박성 주의를 줬다. (홍박사도 아이가 걱정돼 속으로 울었다.) 결과적으로 엄마들은 다시는 울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진료실에서 아이와 엄마를 만나지만 소아과 의사는 항상 아이편이어야 합니다. 아이가 비만이면, 왜 비만이 됐느냐? 일상생활은 어떠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절제 없이 먹도록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아이를 어떻게 돌보고 있냐고 집요하게 묻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알리기 어려운 어린 환자를 대신해 원인을 찾아야 하니 엄마들이 서운해 하는 경우가 많았죠.”

홍박사는 "고압적인 것으로 보여지는 태도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라며 "악의는 절대 없었고 오해는 결국 풀렸다. 하지만 혹시라도 상처를 받은 부모가 있었다면 이해와 용서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와사키 병

독감시즌에는 ‘홍소아과’ 대기실이 근심어린 얼굴의 엄마와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어린 환자로 난장판이 되지만 누구도 환자가 많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만큼 ‘홍소아과’는 명성이 있었다. 이런 이유중 하나가 바로 ‘가와사키병’의 진단 덕분이다.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와사키병은 어린이가 병원체에 감염되면 과민반응이나 비정상적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유독 아시아계 어린이에게 많았고 특히 한인 어린이에게도 많다. 홍 박사가 진단해 치료에 나선 경우가 많다. 증상이 애매해 제때 진단이 안되면 치료가 어려워지기에 홍 박사의 판단은 중요했던 것이다.

#한인 어린이가 잘 걸리는 질병

홍 박사는 캘리포니아 한인 어린이들이 신생아 황달 등 타인종에 비해서 잘 걸리는 질병을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신생아 황달의 경우, 모유 수유 탓인데 한인 엄마들의 수유량이 초기에 너무 적어 탈수로 인한 황달이 발생했다. 특히 한인 모유 속에 어떤 특별한 효소로 인해 황달이 오래 가고 더 자주 병원을 찾는다는 통계가 있다. LA어린이 병원에서 ‘코리안 황달 혹은 옐로’라고 부를 정도다. 둘째, 아토피성 피부염과 천식이 많다. 자연적인 환경이 좋은데 너무 귀하게 여긴 탓에 면역 발달장애가 온다. 셋째, 자폐증인데 특히 고학력의 동양인 엄마에게 많다고 한다. 넷째, 가와사키 병이다. 다섯째, 과체중이다. 한인 어린이중 40~60%가 해당된다. 이민생활과 잘못된 영양 지식때문이다. 너무 맛있는 음식, 공장에서 만든 음식 등을 많이 찾는데 그 대가를 치른다고 설명했다.

#심야에 걸려오는 전화와 보람

엄마들이 울면서 걸어오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 퇴근 후에 10통의 전화를 받는 것은 기본이고 아무 때나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예배 중에도 ‘언제나 받을 수 있도록’ 뒷자리에 앉았다. 그는 "핵가족이고 이민 가정이니 애를 길러본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에게 물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소아과 의사를 찾을 수 밖에 없다”며 “인터넷이 발달했지만 역시 잘못된 정보를 보거나 남편이 늦는 경우, 엄마가 밤에 혼자 있다가 겁이 나서 연락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홍박사는 초창기 한인사회에서 개업을 했기에 시스템 구축에도 많이 참여했다. LA어린이 병원 근무는 물론, 헬스케어 시스템이 바뀌는 시기라서 의사들의 모임인 UHP, 칠드런IPA, 피지션스 헬스웨이, 한미메디컬그룹 등의 IPA 창립멤버와 보드멤버 등으로 참여해 한인 환자들을 도왔다. 또한 마일런 통 박사와 함께 미국인들에게 드물지만 한인에게는 흔한 B형 간염 예방주사를 처음 소개하고 보급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소아과 전문의 은퇴

소아과 의사로 미주 한인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킨 것이 인생 전반기였다면 의료선교로 사람들이 찾아가지 못하는 오지 의료 선교가 후반기 삶의 줄거리다. 올해는 코로나로 직접 선교에 나서지 못했지만 2015년부터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선교단체(Jesus Medical Haiti, www.jesusmedicalhaiti.org)를 통해 건립 중인 병원을 마무리하고 있다. 한인타운 ‘홍소아과’는 지난 9월30일 문을 닫았지만 더 많은 어린이를 살릴 수 있는 병원이 곧 문을 열게 된다.

“아마존에 선교를 갔다가 만난 한살도 안된 아이를 살릴 수 없었습니다. 겨우 14세의 엄마가 안고 온 아이는 심장도 멎었고 손발도 차고 의식도 없었지요. 만약 LA에서였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제가 의료 선교 사명에 눈뜨게 된 계기입니다.”

홍 박사는 “의사로서 40년 이상 우리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며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이들과 가슴 아픈 일, 또한 기쁜 일을 함께 나누는 영광을 누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홍성진 소아과의 차트 등 모든 의료기록은 연방법에 따라 기밀로 처리돼 사무실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같은 장소에서 김규현 박사, 황은경 박사와 퍼머 가르시아(Firmo Garcia) 박사가 의료기록과 연락처 등의 정보를 유지하며 사무실을 운영하게 된다.

홍성진 박사 약력

충남 예산에서 출생해 초중등을 다니고 서울에 올라와 고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의대를 나왔고 3년 군복무 미국으로 왔다. 세인트루크어린이병원(소아과인턴), 뉴욕의대(소아과전문의), 뉴욕버팔로어린이병원(소아혈액학펠로), 로스웰캔서센터(소아종양학)에서 수련했다. 미국소아과학회 정회원, 미국소아혈액종양학회 정회원, LA어린이병원 메디컬스태프였고 LA에서 홍성진 소아과를 개업했다. 한미메디컬그룹 등 여러 IPA의 창립 멤버 및 보드멤버로 활약했으며 남가주 소아과 학계에는 가와사키병 등 다수 특이 질환을 잘 진단한 소아전문의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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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암과 기적, 뇌졸중과 선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스토리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유명한 소아과 전문의 홍성진 박사도 항상 맑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비가 온 적이 여러번 있다. 그 덕분에 그는 천직인 소아 진료에 혼신의 노력을 했다.

#첫번째 시련

LA에 자리를 잡고 개업 후 눈코뜰새 없는 나날이 계속되다 첫번째 시련이 닥쳐왔다. 40세를 맞은 어느 날 그도 환자가 됐다. 후두암에 걸린 것이다. 항암치료 날짜를 잡아놓고 기도했다. 젊어서부터 신앙생활도 나름 열심히 했고 환자를 위해서 열정을 다 했건만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골방에 들어가 며칠을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기적이 왔다. 홍 박사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수술을 앞둔 최종 검사에서 암이 없어졌다”며 “스스로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서 당시 '조직검사'를 학회에 보내 물어봤다. 깜쪽같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이 시련은 홍 박사에게 환자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체험하게 하는 기회였다. 이전에는 '나와 우리, 여기'만을 위한 삶이었다면, 이후에는 '그들, 거기'를 위한 삶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의사들이 치료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의사의 역할은 그저 10%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90%는 하나님과 환자 본인의 치료 의지입니다. 자신이 살아 나려는 의지가 면역력도 높히고 자가 치료도 가능해집니다. 의사나 의료진은 하나님의 치료를 돕는 것에 불과합니다.”

홍 박사는 “그래서 수많은 환자를 진료했지만 내가 치료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겸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시련이 이런 믿음에 확신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두번째 시련과 선교

2002년 진료로 바쁘던 어느 날 홍박사에게 두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첫번째 보다는 작았지만 1주일간 진료를 하지 못했다. 작은 뇌출혈이 왔던 것. 클리닉에 환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도 홍 박사는 선교학교를 다녔는데 그것이 과욕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1주일만에 지나갔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홍 박사와 부인 홍춘주 여사사이에는 1남1녀가 있는데 의대를 잘 다니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목회자가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목회자보다는 ‘의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목사’가 되면 좋겠다고 했지만 고집이 셌다. 결국 그해 부자는 ‘확인’하기 위해서 아마존강으로 선교를 떠났다. 홍 박사의 의료선교 인생의 시작이다.

이후 매년 의료 선교에 나선다. 소아과 의사다 보니 선교현장에서도 인기가 많다. 아프가니스탄을 3번 다녀온 것은 물론, 하이티는 8번, 북한도 2번, 중국 2번, 터키, 케냐, 우간다, 멕시코, 필리핀, 몽골, 아마존강 유역 오지까지 찾아갔다.

-유튜브: Midbar Medical Mission Trip SJH



장병희 기자 chang.byungh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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