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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사랑의 계절 12월을 맞으며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코끝 살짝 시릴 만큼 부는 바람과/ 맑디맑은 파아란 하늘이 아름다워/ 팔장만 끼고 걸어도 따뜻할/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언젠가 읽었던 삼류 소설책 속/ 주인공들처럼 유치한 사랑을 해도/ 아름다워 보일 계절이다.’(정호승의 ‘12월의 시’)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 어디 12월뿐이겠는가. 이 세상은 1년 365일이 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다. 작가가 12월을 사랑하기 좋은 계절로 꼽은 것은 이 계절이 제일 춥기 때문이다. 추위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바짝 더 붙게 만든다. 체온에서 아늑한 따스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에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아무리 많다 한들 사람 체온보다 더 따뜻한 것은 없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춥다는 것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뜻도 포함된다. 그래서 어려울 때 정이 더 깊어지고 서로 위한다는 말도 있다. 이 시는 아마도 여기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많은 시인이 자신의 작품 속에 사랑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사랑이란 말은 범위가 넓지만 대체로 작가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사랑이란 아베 프레보의 ‘마농 레스코’와 같은 정열적인 사랑이거나 혹은 이청준의 ‘눈길’ 같은 숭고한 사랑이거나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같은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랑은 고전 작품에 나오는 그런 사랑과는 많이 다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요즘 현대인들은 무거운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무거운 사랑은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2020년은 사랑하기에는 참 좋은 해였다. 어떤 가족은 양로원에 계신 부모를 만나지 못해 참 애틋한 해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어떤 가족은 집안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가족애가 더 깊어진 해이기도 했다. 나 또한 후자에 속한 경우로 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딸은 조기 은퇴한 자신의 남편과 함께 스페인에서 한 몇 년 살기로 작정을 하고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만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이게 되었다. 딸 내외는 이미 집과 살림살이를 다 처분한 상태라 마침 비어 있는 우리 집 뒤채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그러잖아도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집밥을 해 먹이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려 있던 나는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오겠냐 싶어 마음껏 맛난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사위는 은퇴한 옛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딸은 법정통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자기네들이 알아서 음식을 해 먹긴 했지만 그래도 매일 한 끼는 딸과 사위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무슨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줄까 자기 전에 궁리하고 그것들을 사러 장 보러 다니는 일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딸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 부모에게 안겨주었던 그런 행복을 다시 또 한 번 나에게 안겨주었다.

일주일 전 딸 내외는 유럽을 포기하고 코로나가 좀 더 안전한 한국으로 살러 나갔다. 뒤채를 볼 때마다 아직도 서운해서 눈에 물이 고인다. 그래도 생각할수록 올해는 사랑하기 참 좋은 해였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에세이를 쓴 노희경 작가는 그 책에서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 사랑만 하기에도 너무 짧은 12월이 지나가고 있다,


정국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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