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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김밥 꼬다리 이야기

어릴 때 제일 즐거운 날은 소풍날이었습니다. 소풍의 대표 음식은 김밥입니다. 소풍의 기억은 늘 김밥입니다. 김밥은 차가워도 맛이 좋습니다. 그래서 소풍에 김밥을 가져갔을 겁니다. 집집마다 김밥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의 김밥을 나눠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재료비는 다를지 모르나 맛은 각각의 특색으로 살아납니다.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존중받으면 좋겠습니다. 달라서 즐겁고, 달라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김밥을 싸는 광경은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김밥을 싸시면서 아이들을 부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김밥을 싸고 있는 어머니 옆을 다니면서 김밥을 집어 먹습니다. 도시락에 싸지 않을 부분을 먹는 겁니다. 바로 이 부분이 김밥 ‘꼬다리’입니다. 소풍에 가면 먹을 김밥이지만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먹는 김밥은 정말 맛있습니다. 때로는 터진 김밥을 한 줄씩 들고 먹기도 합니다. 먹는 게 즐겁습니다. 웃으며 먹으니 더 즐겁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에게 ‘꼬다리’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합니다. 주로 제가 사용하는 장면은 김밥을 쌀 때입니다. 김밥을 말고, 칼로 가지런히 잘랐을 때 끝부분을 저희는 꼬다리라고 불렀습니다. ‘꼬다리’를 발음할 때마다 꼬리나 꼬투리와 발음이 비슷한 재미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상으로는 끄트머리라는 표현과도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끄트머리는 끝과 머리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실마리의 마리처럼 끝부분이나 앞부분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꼬다리는 표준어가 아니어서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종종 제가 평생 써 온 말이 사전에 없을 때 당황스럽습니다. 꼬다리는 꼬투리의 방언으로 표시되기도 하니 꼬투리와 관련성이 제일 깊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김밥의 끝부분을 뭐라 하는 게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 꼬다리가 깊게 박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알맞은 표현을 아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어휘 공부는 늘 재미있습니다.



저는 김밥의 꼬다리를 볼 때마다 즐겁습니다. 꼬다리는 끝부분이어서 모양이 나지 않습니다. 겉모습을 중요시한다면 분명 꼬다리는 별로일 겁니다. 김밥의 끝 모습으로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니까요. 어쩌면 가장 부족한 부분이고 전체를 모나게 만드는 요소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잘 싸인 김밥 도시락에는 꼬다리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질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저는 가끔 질서가 답답합니다. 똑같은 모습으로 지내는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김밥 도시락의 모습은 예술입니다. 내용물이 여러 색으로 모이면서 조화를 이룹니다. 노란 단무지, 붉은 당근, 푸른 시금치는 빛이 됩니다. 매끈한 면에 빛나는 색깔이 됩니다. 그런 도시락에 꼬다리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꼬다리는 옆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의 몫입니다. 모양은 어긋나 있지만 맛은 최고입니다. 잘 잘린 김밥보다는 내용물도 많습니다. 넘쳐나기도 합니다. 꼬다리의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소풍을 갈 일이 적어졌습니다. 이제는 점점 김밥을 집에서 싸는 일도 줄어들 겁니다. 간단하게 산 도시락을 가져가겠죠. 편함과 따뜻함은 서로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편하지만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집에서 김밥을 싸고 있습니다. 아들과 저는 얼른 가서 꼬다리를 집어 옵니다. 맛있습니다. 웃음이 납니다. 꼬다리가 내 속으로 들어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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