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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석류 키우는 가정 치유 봉사자

“닥터 정, 휴게실에 가서 석류를 좀 보세요. 어느 봉사자께서 집에 있는 나무에서 따 오셨나 봐요.”

한인 가정상담소의 캐서린 염 소장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잘 익은 석류들이 새빨간 속살을 터질 듯이 내보이며 상자 안에 가득하다. 키운 나무에서 열매를 딴 후, 팬더믹으로 어려운 상황에 마스크를 쓰고 상담소에 갖고 왔을 정성이 눈에 선하다. 그는 1년 내내 텃밭에서 상추를 길러 상담소 직원들에게 주고, 계절에 따라 많은 채소들을 가져온다고 한다. 이렇게 직원들에게 ‘영양 공급’을 하지만 그의 주된 활동은 따로 있다고 한다.

염 소장은 그에 대해 말한다. “그 분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해 오셨어요. 가정 폭력 가해자들을 위해 지난 10년간 봉사해 오셨어요.”

처음 그가 상담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 자신이 가정폭력 혐의로 기소돼 52주간의 ‘분노 조절 상담치료 과정’을 수료하면서부터다. 비록 판사의 명령으로 강제 부과된 과정이었지만 그는 1년간의 배움을 끝낸 뒤에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가해자 남편들을 집단 치료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 그러자 많은 가해자 남편들이 쌍수(?)를 들어서 그를 환영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판사의 명령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 집단 치료에 참가해야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과정을 젊은 여성 치료사 대신에 ‘같은 남자’이면서 폭력 전과(?)를 공유한 경험자로부터 받는 것이 훨씬 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분노는 슬픔, 무서움, 불안감 등과 같은 감정의 일종이다. 우리 두뇌 안에 있는 여러 기관 중에서 번연계(감정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포유 동물들은 번연계를 갖고 있다. 이곳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3가지 기능, 즉 배고픔 인지, 통증 인지, 스트레스 반응을 한다.

개는 주인이 바뀌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자고 낯선 사람을 보면 으르렁거린다. 이런 반응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는 개나 인간이나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성적 사고를 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있어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 단 전두엽의 성숙은 출생 후 오랜 시간이 걸리고 25살 정도가 돼야 충분한 기능을 발휘한다.

뇌가 정상적으로 조절 기능을 익히려면 어린 시절 주위 어른들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주 어린 아이가 엄마가 아버지에게 폭행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면 아이의 번연계 안에 있는 ‘공포 중추’가 심한 자극을 받아 조절 능력 같은 ‘집행 기능’을 잘못 배우게 된다. 집행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주의산만증 증상을 보인다. 이는 유전으로 인한 병으로 어린 시절에 진단해 치료하면 된다. 어른이 된 후에도 치료를 받으면 효과가 좋다.

어린이들이 집행 기능을 배우는 가장 흔한 방법은 부모의 행동을 따라서 할 때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면서, 부모가 동생과 싸운다고 아이를 폭행한다면 이 아이는 친구들과 싸움부터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폭행 가해자들을 지도하는 그 봉사자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석류를 먹으면서 상상을 해 보았다. 그가 석류를 키우기 위해 물을 주고 비료를 뿌리며 정성을 다했을 사랑이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이해 받고 싶고, 있는 그대로 사랑 받기를 원한다. 그 봉사자는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사랑하는 가족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한 가정 폭력 가해자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성스럽게 석류를 키워 남들과 나누는 그 마음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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