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시 론] 위기 속 삶의 의미를 배운 한 해

강남순 /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2020년은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남긴 해였다. 1918년 5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소위 스페인 독감 유행병 이후, 인류가 경험하는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라고 하는 코로나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통해서 생명의 위기만이 아니라, 극심한 경제적 위기와 정신적 위기로 인해 자살이 증가한 해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중단하겠다고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개가 ‘견생의 의미’가 없다며 자살하지는 않는다. 사람만이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절망으로 자살한다.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의 죽음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죽음은 신문에 한 줄로도 등장하지 않고 파묻힌다. 죽음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다른 취급을 받는다. 이렇듯 ‘생명의 위계주의’는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의 죽음이든, 매 죽음들은 각기 다른 세계의 종국을 선언한다. 그런데 개인들이 경험하는 삶의 의미나 무의미, 또한 삶과 죽음의 경험은 전적으로 개인적이기만 한 것인가. 아니다. 개인적인 것은 사회정치적이기도 하다.



오래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일하던 시기, 그 당시 파리에 거주하고 있던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한참을 걷다가 어느 벤치에 앉아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저 사람들 좀 봐”라고 한다. 우리가 앉아 있던 벤치 멀리 맞은 편에 있던 다른 벤치에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쉬지 않고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의 관찰에 따르면 우리보다 먼저 자리 잡고 있던 그들은 최소 30분 이상은 계속 키스를 하고 있었단다.

알랑 바디우는 키스를 포함해서 인간이 몸과 몸으로 나누는 여타의 행위를 ‘몸의 예식’이라고 명명한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와 만나는 ‘함께함의 예식’이며 ‘존재의 예식’이다. 서로의 존재를 전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만이 키스를 나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연인 간의 키스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키스는 상대방과 나누는 삶의 의미 그리고 지순한 관계를 가리키는 심오한 메타포가 된다.

2020년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했던 해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우리 삶의 의미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조명해보게 하는 해였다. 물질적 풍요와 막강한 권력을 누리거나 또는 비싼 아파트를 소유했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감이나 삶의 의미를 저절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상기시키는 해였다.

프랑스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철학자 뤼크 페리는 ‘사랑에 관하여: 21세기를 위한 철학’이라는 책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상투적인 것 같은 “사랑에 관하여”를 책 제목으로 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사랑이란 인류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에도 그랬지만, 특히 앞으로의 세계는 국가나 종교보다도 사랑이 더욱더 가장 중요한 중심에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페리는 본다.

사랑은 분노, 두려움, 질투, 증오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 중의 하나가 아니다. 또한 사랑은 개인들 간에 벌어지는 사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회정치적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사랑은 교환 경제의 틀을 넘어서는 진정한 관계를 상징한다. 우리의 인간됨을 지켜내게 하는 것은 진정한 관계이며, 이러한 의미의 사랑은 개인적으로 또한 사회정치적으로 일구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키스로 상징될 수 있는 사랑 즉 진정한 관계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평등과 자유, 그리고 존엄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고유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타자와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가리킨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맺는 많은 관계는 주는 만큼 받아내는 ‘기브-앤-테이크’의 교환경제의 틀 속에서 작동되곤 한다. 모든 관계들을 이렇게 계산된 관계로 이해하는 사회에서, 존재와 존재의 만남으로서의 키스는 부재하다. 결국 휴머니티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키스로 상징되는 의미로운 관계란, 너와 나의 평등과 존엄성이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보장되는 사회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평등과 정의가 일상적 삶에서 가능한 사회, 그래서 나와 너의 진정한 만남이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도 격려되는 사회는, 코로나와 같은 위기 한가운데서도 ‘키스’로 상징되는 진정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다. 새로운 해에는 진정한 만남과 관계가 더욱 풍성해지게 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