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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이희호 여사의 '동행'

인간의 모습은 위치에 따라 다르다. 앞에서 보느냐 뒤에서 보느냐 가까이서 보느냐 멀리서 보느냐.

위인이나 유명인은 '원거리.정면'에 고정돼 있다. 그 물리적 위치와 거리는 그들을 더 능력있고 멋있고 신비롭게 한다.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는 '높이'까지 끌어들였다. 그는 "7층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면 보도에 몸을 부서져라 눌러대고 반쯤 기는 듯한 두 다리는 그들의 어깨 밑으로 나와 있다"며 땅바닥에 바짝 붙어있는 인간의 모습에서 정신적 우월성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결국 멀리 높은 곳 정면이라는 '위치 함수'를 잘 활용하면 실제보다 좀 더 '위대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위치 우월성' 확보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배우자 즉 남편과 아내다. 매일 가까이서 보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를 확보할 수 없어 온갖 추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외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위선 유치함 간교함 때론 사악함까지 드러날 수 있다. 가까우면 사랑할 수는 있지만 존경하기가 힘든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런저런 자료를 보면서 가장 감동한 글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김 전 대통령이 올 2월 7일 일기에 쓴 글이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또 하나는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편지.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 여사는 남편을 보내는 이 글을 일반 종이가 아닌 '이희호 자서전:동행' 앞 표지에 직접 썼다.

책 제목처럼 이 여사는 1962년 사회적 지위도 집도 재산도 하나도 없는 데다 시어머니와 병든 여동생 두 아들이 있는 정치 재수생과 결혼해 온갖 시련과 마음 고생을 겪으며 남편과 함께 했다. 남편은 동행의 부제를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라고 달았었다.

책에는 김 전 대통령의 가까운 모습 뒷모습이 담겨있다. "남편은 군것질을 좋아한다. 인절미를 비롯한 떡과 사탕 종류를 즐겨 먹는다. 여름에는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딱딱한 아이스바를 자주 먹는다. 청와대에서도 직원들이 밖에 나갔다 오면서 사 오는 붕어빵을 아주 좋아했다."

"아직 (남북)정상회담 중이라고 했다. 2시간째 계속되고 있었다. 잠시 휴식차 온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다시 회담장으로 갈 때는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무거운 걸음을 떼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고독하고 힘겨워 보였다. 그날의 그가 결혼 생활 중 만난 가장 고독한 모습이었다."

세상 끝까지 가는 동행이라는 마차의 두 바퀴는 사랑과 존경이다. 동행은 단순히 나란히 걷는 것이 아니다. 손은 맞잡고 있지만 걸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 밖에 없다. 그 간극을 잡아주고 좁혀주는 것이 사랑과 존경이다.

사랑은 따라가는 것이고 존경은 이끌어주는 것이다. 또 사랑은 이끌어주는 것이고 존경은 따라가는 것이다.

힘든 세상이다. 경제적 곤궁함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쪼개지고 갈라지는 이 시대에 죽을 고비와 상상하기 힘든 고난을 함께 한 김대중-이희호 부부의 '바보같은 사랑'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부부는 모든 위치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고 품었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최성수의 노래 '동행'이다. 동행은 '함께 울어줄' 고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은 위대하고 고난을 이겨낸 부부는 거룩하다. 이희호 여사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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