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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2]포스트 코로나 한인사회

외딴 섬처럼 고립된 사회
갈등과 반목의 악순환
체질개선, 새롭게 거듭나야

2021년 신축년을 맞으며 대중이 새해에 거는 기대가 예년과 사뭇 다르다.
2020년이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전염병은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12월 22일 남극 소재 칠레 군사 기지 내 확진자 발생을 기점으로 말 그대로 ‘전 세계’를 점령했다.
코로나가 의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는 여전히 진행형인 부분이지만, 발병 후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학자든 사회학자든 팬데믹 이후 새로운 사회 규범이 자리잡을 것이라는 데에는 커다란 의견 차이가 없다. 백신과 집단 면역 형성으로 어느 정도 예전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팬데믹으로 지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희망사항이다.
팬데믹이 사회 전반에 걸쳐 입힌 데미지가 너무 크다. 복구하는 데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다. 그 기간을 어떻게 지나느냐에 따라 미래는 확연하게 나뉘게 될 것이다.

1903년 하와이 이주를 시작으로 미주 한인 이민 역사는 햇수로 118년을 맞이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인터넷 등장 이후 맞지 않는 속담이 돼 버렸다. AI 스피커, 스마트 가전용품 등 인공지능을 장착한 생활 소품이 보편화 되면서 일상은 빠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 비해 사람들의 정신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적응하고 있어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괴리는 이민 사회에서 훨씬 더 두드러진다. 지금 우물을 박차고 나오지 않으면 영영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영어 구사력과 상관없이 한인은 겉도는 경향이 있다. 흑백 갈등과 인종차별 문제가 수십 년 째 여전히 뜨거운 이슈인 것을 감안하면 한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외딴 섬 경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흑인 인권 운동이 노예제도라는 뚜렷한 사회적 압박과 부조리에 대한 항거라는 것에 반해 아시안 이민자는 백인 주류 사회와 섞이기도 애매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소리를 높일 힘도 없는 어중간한 위치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중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난 흑인이 아니니까 백인이야’라고 생각했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스스로 백인이라고 생각 했다는 이 아이들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한국 친구나 아시안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부모들의 생활 반경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한인 인구가 25%에 육박한다는 메릴랜드 엘리컷시티에 사는 한 틴에이저는 ‘아빠의 대학 친구가 한국인이 아니어서 굉장히 놀랐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자녀 교육에 열심을 내는 한인 및 아시안이 학군 좋은 지역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어른들도 한국 사람끼리 혹은 피부색이 비슷하고 이민자라는 처지가 비슷한 아시안 학부모들끼리 좀 더 왕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녀들의 사회생활도 자연히 같은 패턴을 따른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 미국 온 지 얼마 안 된 이민 초년생, 한인 없는 곳으로 이민 와 주류 사회에 더 많이 동화된 코메리칸 등 제각각 끼리끼리 어울린다.
대학에 가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아이비리그 등 유수 대학의 한인/아시안 학생 비율이 높은 데 반해 그들이 얼마나 섞이지 못한 채 학점에만 집중하다가 졸업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그 많은 학비를 들이고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주류 사회 인맥 형성에 실패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유럽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넘어왔던 세계 주도권이 이제 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고 서슴지 않고 단언하는 샘 리차드스(Samuel Richards) 사회학 교수 (Penn State,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강의는 800여 명이 수강한다. 사회학119(SOC 119) 강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5만3000명의 구독자를 갖고 있다.
리차드스 교수는 한 강의에서 아시안 학생들을 앞으로 나오게 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미국에서 태어났는지, 본국에서 온 유학생인지를 알아맞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험에 임한 4~5명의 학생은 9명의 남녀 학생들의 헤어스타일, 화장, 옷, 체격 등만 가지고 중국 유학생, 한국 유학생,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을 대부분 구분해 낼 수 있었다.

같은 피부색과 외형적 보편성이 문화/정신/생활 습관적 유대감과 항상 비례한다는 것은 아님을 증명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절대다수의 아시안 학생들이 편해진 경계 밖으로 나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부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또한, 정체성에 대한 고찰이 없기 때문이고 인류와 사회에 대한 통찰력, 존재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편협한 세상에서 무한 경쟁하도록 길러낸 건 어른들이다.
팬데믹 때문에 일상이 비대면화 되면서 그전부터 안고 있던 문제들을 가장 극명하게 수면 위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기관이 공립학교다. 겉으로는 비영리 단체인 것 같지만 안으로는 수십억 달러짜리 비지니스기 때문이다.
공립학교 시스템은 지방 정부, 행정 공무원, 교사 노조, 학부모회, 학생회, 조달사업자, 토지 개발 및 건축 회사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종횡으로 얽혀있는 거미줄이다. 하지만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의 목표는 의외로 단순하다.
사학 재단과 마찬가지로 이윤 창출이다. 사립학교가 등록금이라는 가시적인 ‘이윤’을 운영하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만, 공립학교는 조금 복잡하다.

드러나는 이윤이 없고, 예산도 지방 정부에서 타서 써야 한다. 그러나, 일단 공립학교 시스템이 훌륭하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자녀를 둔 가정들이 유입되기 시작하고 세금이 거둬 들여진다. 소문난 학군은 집값이 오르고, 집값이 오르면 재산세가 올라 정부의 예산은 두둑해진다. 명백한 이윤이 발생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좋은 학군’의 유명세를 유지하기 위해 학생들은 체계의 아래쪽에 위치한 ‘일꾼’으로 내몰린다. 공부를 많이 해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하며, 돈 잘 버는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
아시안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이 달갑지 않은 유명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도 해야 한다. 부모 세대와는 소통이 되지 않고, 교사들도 성적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교과 과정은 늘어나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팬데믹 후 하워드 카운티에서 고등학생이 두 명이나 자살을 했고, 최근에는 겨우 13살 짜리 중학생이 자살 시도를 했다. 모두 한국 학생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정사의 영역을 넘어선 사회 문제임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작년엔 119 응급콜을 남용하는 한인 노인들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응급콜이 접수되면 출동을 해야 하고, 뚜렷한 증상은 없어 보이지만 고통을 호소함으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특정 노인 아파트에서 비슷한 경우가 반복되자 하워드 카운티 보건국은 ‘통증 자가 관리’ 캠페인에 나섰다. 높아진 앰뷸런스 운영비가 질병 또는 부상 관련 수치와 부합하지 않자 잦은 응급콜이 신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이유라는 가설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병을 빌미로 주변 사람들의 관심/주의를 갈구하는 정신병리학적 장애를 일컫는 ‘먼차우젠 증후군’까지는 아니어도 고독감과 소외감으로 인한 습관적/충동적 행동은 충분히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모국을 떠난 이민자의 삶이란 서러움과 수고로움으로 점철돼 있기 마련이다. 한인 특유의 근면 성실과 뛰어난 능력이 경제적 윤택함을 가져온 것은 여러 가지 수치를 통해 확인된 바다.

그러나 이런 성취는 안타깝게도 개인사의 경계 안에서 이뤄져 왔다. 한인 커뮤니티는 개인의 능력치를 반영하지도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엽적인 영향력밖에 행사하지 못하며 다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구심점 역할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수백 개의 교회, 수십 개의 한인회, 수평이동하는 교인들, 나 홀로 한인회장들, 마음이 병들어가는 청소년과 노인들, 양쪽으로 그들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중년 세대. 지칠 대로 지친 한인 사회는 체질 개선, 혁신이 시급하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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