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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 여자와 두 절친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그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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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1/01/13 15:01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42)
1863년 발표된 비제의 ‘진주조개잡이’는 이국적인 인도양의 진주섬을 배경으로 신비로운 동양의 춤과 음악을 담은 오페라입니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의 사랑과 우정을 다루고 있지요. 몽상에 빠진 듯한 이 작품에서 그는 진주 빛깔 영롱함을 실론섬 바닷가의 달빛처럼 반짝이게 표현했답니다. ‘진주조개잡이’는 우아하고 서정적인 선율과 진주처럼 찬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한 보석 같은 작품인데, 아쉽게도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지요. 비제의 불세출의 명작 ‘카르멘’의 명성이 너무 강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국적인 정취가 잔뜩 묻어나는 전주 뒤에 막이 오르면, 진주조개잡이 배가 석양빛으로 샤워를 하고 바람을 쐬고 있는 듯한 실론섬 해변가입니다. 바다 끝자락에 해가 지고, 해넘이의 그림자가 나무에 기대거나 풀섶에 눕고 있는 평화로운 정경이지요. 마을 뒤쪽에는 힌두탑을 품은 채 우뚝 솟은 바위가 바다를 향해 서있고, 마을 중앙에서는 진주조개잡이 어부들이 춤추며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깊은 울림을 주는 타악기 리듬을 깔고 동양의 신비 가득한 발레와 합창이 분위기를 달구고 있지요. 이 자리에서 그들은 가장 신망이 두터운 주르가에게 복종할 것을 다짐하며 추장으로 추대합니다.

그때 오랫동안 마을을 떠났던, 주르가의 절친 나디르가 나타납니다. 두 사람은 반갑게 만나 같이 술을 마시며, 오래전에 한 사원에서 아름다운 여사제와 동시에 사랑에 빠졌던 일을 회상합니다. 2중창 ‘신성한 사원 뒤에서’를 부르는데, 그들은 지난 추억을 서로 다른 감정으로 노래한답니다.


사랑의 불길이 타오른 그들은 절친끼리 적개심을 품었지만, 이제는 지난 일이라며 우정을 키워가자고 서로 약속합니다.

이때 진주조개잡이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 줄 사제 레일라가 해변에 도착합니다. 추장 주르가는 그녀에게 정절을 지키고 성스러운 기도를 올려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녀는 사제의 소임에 충실할 것을 서약하지요.

혼자 남은 나디르는 꿈에도 그리워하던 여사제를 떠올립니다. 사실 그는 예전에 주르가와의 맹세를 어기고, 그녀를 찾아가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를 숨어 듣곤 했지요. 그는 추억을 떠올리며, 서정적이고 가슴저린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을 부릅니다.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잠이 들지요.


어부들의 합창과 함께 제사장의 요청으로 레일라는 바위 위에서 바다를 향해 노래하며 신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녀의 기도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잠결에 놀라 잠이 깬 나디르는 바로 그 노래가 자신이 사랑했고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그녀의 노래임을 알아채지요. 브라흐마 신께 바다의 평온을 구하는 어부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레일라와 나디르의 노래가 달빛을 받으며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만나고 있답니다.

노래 소리를 따라 나디르가 신전에 옵니다. 레일라는 그에게 발각되면 큰일날 것이니 어서 자리를 피하라며 애써 그를 외면하려 하지요. 허나, 그녀의 노래를 숨어 듣던 추억까지 소환하며 절절하게 구애를 하는 나디르에게 레일라도 결국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맙니다. 예전에 숲에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나디르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때 당신을 기다렸어요”라며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행복했었다고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나디르를 원하는 자신의 마음을 끝까지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는 그를 포옹합니다. 이렇게 운명적인 사랑으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을 맹세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지요.




레일라와 나디르의 해후. [사진 국립오페라단]






이때 오케스트라가 폭풍에 번개 치듯 연주하고, 제사장이 뱃사람들과 함께 나타납니다. 결국 레일라와 나디르가 잡혀서 끌려 나오지요. 폭풍우가 몰아치고 성난 파도가 일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성소에서 불경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며 죽여야 한다고 소리 높여 합창을 합니다. 주르가는 동이 트면 그들을 처형할 것을 명합니다.

한편 주르가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어릴 적 친구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과 여전히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틋함이 교차해 고통스럽지요. 이때 레일라가 찾아와 ‘사랑하는 나디르’를 석방시켜 주고, 자신만 죽여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러자 오히려 주르가의 질투심이 활활 불타오릅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영원히 없애버릴 거라며, 그녀의 간청을 냉정히 거절합니다.




아, 벗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사진 국립오페라단]






낙담한 레일라는 진주목걸이를 주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목걸이를 본 주르가는 아주 오래 전에 적에게 쫓겼을 때 목숨을 구해준 소녀가 바로 레일라임을 깨닫게 된답니다. 그가 선물한 진주목걸이였던 것이지요.

날이 밝아오고 마을 사람들이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마을 한가운데에서 벌건 불길이 솟아 오르는게 아닙니까! 주르가가 나타나 마을에 불이 났다고 소리칩니다. 추장의 지시에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자, 주르가가 화형대에 묶인 나디르와 레일라 앞에 나타납니다.

주르가는 레일라가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었음을 고백하면서 그들이 도망가도록 풀어주지요. 그들의 행복한 사랑노래 소리가 멀어지는 가운데, 주르가는 꿈 같은 사랑에 이별을 고하며 해변가에 홀로 쓰러집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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