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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양육칼럼]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했던 2020년이 저물었다. 여느 해보다 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새해를 맞는 자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는 게 좋을까 생각해본다.

훌륭한 조언들이 많은 중에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것은 구약성경(전도서 7:16)의 내용이다.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고 권면하면서 너무 착하게 살면 망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성경에는 “지나치게 의인 되지 마라(Do not be over-righteous)”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그 의미가 알듯말듯하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공동번역 성경에는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로 표현되어 있고, 영어로도 뉴리빙(New Living) 번역과 굿뉴스(Good News) 번역에는 “Do not be too good”이라고 되어 있어서 머리에 금방 들어온다. 그래도 너무 착하게 산다는 게 과연 무슨 뜻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너무 착하게 살지 않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던 중에 한 랍비에게 들은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수년전 세계의 여러 종교에 관해 강의할 때 학생들을 데리고 다양한 종교시설들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한번은 포트워스에 있는 유대회당을 방문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랍비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고 회당의 구석구석으로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주었다. 랍비가 되기 전에 재즈 피아노를 쳤었다며 연주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회당을 다 돌아보고 나서 집회실에 둘러 앉아 질문과 대답의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의 질문이 끝나자 랍비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노아는 왜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했었을까요?” 창세기 9장에 보면, 홍수가 지나간 후 노아는 포도농사를 지었다. 그가 어느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텐트 속에 들어가 벌거벗고 잠이 들었다. 막내아들 함이 텐트에 들어 갔다가 아버지의 나체를 보고 나가서 두 형에게 알렸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쳐 들어가서 아버지를 덮어드렸다. 노아는 왜 그토록 만취했었을까?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질문이었다.

학생들도 모두 대답할 말이 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나서 랍비가 입을 열더니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창세기 18장에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죄악이 심히 무거워지자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결국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흥정하듯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피할 수 있도록 해보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다음으로 랍비는 모세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모두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셨다. 모세의 간곡한 만류로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셨다. 그후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10명의 절망적인 보고만 듣고 통곡하며 모세를 죽이려고 했다. 그때도 하나님이 믿음 없는 백성을 완전히 멸하려고 하셨으나 모세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민수기 14장).

그러나 노아는 완전한 의인이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게 착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부패와 포악이 가득한 땅의 모든 사람들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실 때, 노아는 단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 홍수가 끝나고 자신의 맹목적인 복종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도저히 맨정신으로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만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었다는 것이 심리학을 전공한 랍비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설명의 끝에 노아 같은 사람을 보면 멀리하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그런 사람 가까이 있으면 망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랍비의 이야기가 신학적인 문제가 있는 성경해석일 수는 있겠지만, 너무 착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화가 될 수도 있다. 교회 일은 열심히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필요를 외면하거나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종교인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종교적인 우월감을 버리고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 너무 착하게 살지 않는 것이다.

또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는 말에는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어릴 적에 어떤 부흥사가 깡패 출신의 목사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과거에는 성격이 불 같고 행동이 난폭했는데 예수를 믿은 후로는 사람들이 놀리고 때려도 묵묵히 참았다고 했다. 그 예화를 들으며 훌륭한 크리스찬이 되려면 모든 일에 순응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오른뺨을 친다면 왼편도 돌려대야 하겠지만, 매사에 무조건하고 무저항 비폭력을 실천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불의한 일을 보면 맞서야 한다. 강도를 만나면 도망을 가거나 숨거나 싸워야 한다. 집에 보안장치를 해야 한다. 군대도 가고, 전쟁이 나면 총을 쏘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너무 착하게 살지 않는 것이다.

또한 너무 착하게 살지 않는 것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다. 부정적인 것을 절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절제할 필요가 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해지고 온갖 성인병에 걸릴 수 있으니 절제해야 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실수하게 되고 건강을 해치게 되니 절제해야 한다. 반면에 착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절제가 필요하다. 자신의 숙제가 산더미 같을 때는 친구의 숙제를 돕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 학생이 동아리활동이나 학교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모임에 가담해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학생들을 종종 본다. 좋은 일에 대해서도 때로는 “아니오(No)”라고 말하고 거절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너무 착하게 살지 않은 것이다.

답답하고 우울한 한 해를 보내고, 코로나바이러스의 종식과 함께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 것이라는 부푼 희망을 안고, 2021년 새해를 맞은 자녀들아,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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