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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산불을 지척에 두고

[LA중앙일보] 발행 2009/09/03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09/09/02 19:52

이종호/J-퍼블리싱 본부장

# 8월 31일 늦은 밤 LA시 북쪽 라크레센타. 너울거리는 불꽃이 온 산을 훑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화염의 군무. 꿈틀꿈틀 흘러내리는 용암 같다. 벌써 6일째다. 매캐한 연기에 뜨거운 화기가 묻어온다. 엄습하는 두려움에 말문을 닫은 사람들. 지척까지 다가온 공포에 몸을 떤다. 소방관 2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다급하게 들려 온다.

9월1일 아침. 세상은 여전히 잿빛이다. 밤새 날아온 재로 집도 차도 뽀얗게 덮였다. 불길은 계속되고 희뿌연 연기는 천지간에 가득 찼다. 휑한 길 부지런하던 새벽 산책객들도 차취를 감췄다. 코요테 한 마리가 인적 끊긴 차도를 따라 어디론가 가고 있다. 불을 피해 내려온 모양이다. 산불은 동물에게도 고통이다.

우기가 지나면 7~8개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남가주다. 그런데도 산에 그렇게 많은 나무들이 살아 있다는 게 늘 경외스러웠다. 척박한 바위틈 푸석푸석한 모래 땅에서도 굳건히 뿌리내렸던 생명들. 하지만 장렬하게 산화하는 현장을 보는 마음은 무겁고도 착잡하다. 온갖 첨단 진화 장비와 기술로도 속수무책이다.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무력하다.

# 땅이 메마르고 기온이 올라가면 울창한 삼림에선 저절로도 불이 붙는다. 하지만 요즘 산불의 80% 이상은 사람의 부주의한 실수에 기인한 것이라 한다. 이번 산불 역시 원인은 사람이었다.

생태계 순환을 위해 산불은 꼭 필요한 자연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타 버린 잿더미가 토양을 기름지게 해서 삼림의 자생력을 키우고 생물이 더 잘 살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어떤 곳은 그래서 일부러 불을 끄지 않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나 할 수 있는 한가한 소리다. 가까이서 직접 보는 산불은 흉흉하고 살벌하다.

인명피해 재산피해 만이 아니다. 산불로 전소된 지역은 나무가 사라져 땅을 잡아 주는 힘이 약해진다. 집중 호우가 내리면 토사가 흘러내려 산사태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공기 오염 또한 심각하다. 솟아오른 연기는 수백 마일 밖으로까지 퍼져 간다. 수십 년 수백 년 지켜져 온 생태계도 한순간에 붕괴된다.

자연의 복원력을 믿지 않는 바 아니다. 하지만 다시 100년이 걸리고 200년이 걸릴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자연 앞에 조급해 질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 재난은 언제나 당하는 사람들만의 것이다. 아무리 큰 재앙도 국외자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뉴스일 뿐이다. 중국의 지진 아프리카의 기근 동남아의 태풍에 한번이라도 절절한 안타까움에 가슴을 쓸어 본 적이 있었던가. 수천 수만 명의 희생자가 나와도 먼 땅의 아픔은 늘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 동네 나의 경험이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작은(?) 산불 하나에도 우왕좌왕이다. 하찮은 고통에도 괴로워하고 소소한 불편에도 불평이 넘친다. 이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재난을 겪으면 겸손해진다. 나의 고통을 통해 타인에 대한 긍휼도 배운다. 그러나 우매하고 완악한 사람은 다르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거나 기껏 푸념으로만 되새김질한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경험해보지 않고도 깨닫는다. 이웃의 고통을 통해 나를 돌아볼 줄도 안다. 더 먼 이웃의 아픔을 위해 작은 손이라도 내민다. 심장이 따뜻한 사람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사람은 결국 이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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