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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주먹' 문성길, 은퇴 후 좌절 연속…지금은?

[일간스포츠] 기사입력 2009/09/04 09:11

[박수성의 How are you] ‘돌주먹’ 복서 문성길

그를 만난 곳은 강동구 성내동 둔촌역 근처 한 건물 4층의 당구장이었다. 당구대 8대를 갖춘 당구장을 그는 6개월전에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오후 3시께라 인터뷰 하는 내내 손님이 없었다.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에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쉰이 되는 그의 손은 아직도 굳은 살이 군데군데 박히고 억셌다.

그의 별명은 '돌주먹'이었다. 경량급에서는 보기 드문 강펀치 한 방으로 현란한 풋워크와 잔재주를 앞세운 아웃복서들을 보내버리곤 했다.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던 라이벌 허영모와 대결에서도 세 번 붙어 모두 이겼다. 그 중 두 번의 경기는 박빙이었다.

문성길(48). 호적이 2년 늦은 63년으로 돼있어 나이 때문에 곡절도 많았다는 그는 어느덧 지천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강촌에 살고 싶다'

그의 애창곡은 '강촌에 살고 싶어…가 들어가는 노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주먹 하나로 돈 벌어 '먹는 것 걱정 안하고 산다' 할 정도의 경제력을 일궈낸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이제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 그냥 쉬지 않고 열심히 움직여서 가족들과 웃으며 사는 것이 행복하다.

6개월전 당구장을 인수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단다. 물론 당구장이 전부가 아니다. 중계동, 구리, 서산 등 4곳의 롯데마트에 철판볶음밥 가게를 내 운영하고 있다. 벌이가 먹고 살 정도는 된다.

아내가 주로 운영하고 자신도 일손이 딸리면 틈틈히 도와준다. 아들은 중국에 유학가있고 딸도 대학생이다. 강동 쪽에 널찍한 아파트도 장만했다. 돈을 많이 모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까지 다 얘기해야 혀?"하며 웃는다.

역시 쉽지 않았던 은퇴 후

그는 WBA 밴텀급에 이어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한 90년부터 당시 모 제약회사의 스폰서십을 받아 활동했다. 트렁크에는 제약회사의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혔었다.

은퇴 후 평생 이사직을 보장한다던 그 회사는 그러나 정작 93년 은퇴 후 말을 바꿨다. 대리 옆에 옹색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일도 주지 않았다. 가끔 입금표나 몇장 써보라는 게 전부였다.

"사회 생활도 배울 겸 3년만 꾹 참고 있자"고 마음 먹었고 꼭 3년 후 사표를 쓰고 나왔다. 세상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이 때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 모 언론사 광고지사에서 3개월을 근무하다 내 일이 아니다 싶어 나왔고 그 후 몇년을 방황하다 90년대 후반 철판볶음밥이 한참 유행하던 때 지인의 소개로 체인점을 알게 됐다. 잠실 롯데마트에서 첫번째 체인점을 내 일을 배웠고 장사가 잘돼 체인점을 4개로 늘렸다.

그 와중에 사업 제의도 여러번 받고 몇번 소소한 돈을 떼이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내 힘으로 버는 일 아니면 믿지 말자"는 소신을 지키며 그런대로 돈 관리를 잘 해왔다.

마지막 두차례 방어전의 대전료 1억여원을 소속 프로모션으로부터 받지 못한 일, 병역특례 혜택 의무 기한을 지키지 못해 현역 입대한 것 등 주변과 국가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이 '돌 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한 생활을 하게 했다.

2000년에 강동구 성내동에 '문성길 복싱클럽'을 내 5년 동안 운영하며 키웠지만 그는 2005년 자신을 도와줬던 후배에게 넘겼다. 수원, 부산 등지에 자신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복싱클럽이 몇 군데 있지만 직접 운영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권투 쪽은 그만 할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진한 회한이 묻어났다.

올림픽과 10차 방어전 실패가 한으로 남아

프로와 아마에서 모두 정상에 섰던 그가 지금도 가장 아쉬워 하는 것은 올림픽 메달을 못 딴 것과 10차 방어전 실패다.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세계선수권(86년) 금메달을 따고 아시안게임 메달 2개까지 딴 그였지만 84년 서울올림픽에서는 8강전에서 무너졌다. 확실한 금메달감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1회에 의외의 카운터펀치를 맞은 뒤 경기가 안 풀렸다.

WBC 10차 방어전은 더 아쉽다. 호세 루이스 부에노에게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 홈어드밴티지까지 있었지만 일본세의 입김에 눌려 이긴 경기가 판정패로 돌변하고 말았다. 10차 방어전을 성공하면 통합 타이틀전을 열기로 약속이 된 터라 억울함이 더했다.

문성길은 "당시 대전료를 확실히 주겠다는 약속만 있으면 체급을 올려 3관왕에 도전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이젠 큰 욕심없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권투하고싶어 6개월간 학교 안 가고 버텨

문성길이 권투를 시작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육상을 했던 문성길이 전남체고(현 광주체고)를 떨어지고 재수를 하던 때였다. 후배로부터 덕인고에서 육상과 권투 특기생을 함께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면접에서 "권투를 하고 싶다"고 했으나 "육상을 하지 않으면 장학금 혜택을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끝에 입학을 결정했다. 중장거리가 주종목이었던 문성길은 고1 시절에는 3000m, 5000m 등 종목에서는 목포권에서 1위를 휩쓸었다.

고2때 까지는 육상이 끝난 후 몰래 체육관을 다니면서 권투 연습을 했으나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고2때 말에 권투에 전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퇴짜를 맞은 후 6개월 학교를 안나가며 버틴 끝에 간신히 허락을 받았다.

이후 전국대회 3위 성적을 6번 내며 목포대에 진학한 후 대학 1학년때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뜻밖의 금메달을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그를 빛나게 해준 결승전 상대가 태국의 '완차이 풍수리'였다.

86 아시안게임 직후 문성길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7000만원대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로 전향한다. 빨리 돈을 벌고도 싶었고 껄끄러웠던 상대인 허영모의 존재도 프로행 선택의 한 이유가 됐다.

■ 문성길은?

생년월일: 1961년 7월 20일(호적엔 2년 늦은 63년)
출생지: 전남 영암
체격: 166㎝, 66㎏
학력: 도신초-도포중-덕인고-목포대-동국대 경영학과 수료
경력: 82년 아시안게임 금
85년 월드컵 금
86년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 금
87년 프로 데뷔
88년 WBA 챔피언(밴텀급·2차방어 성공)
90년 WBC 챔피언(슈퍼플라이급·9차방어 성공)
93년 은퇴
가족: 김명자(48)씨와 1남(재광) 1녀(가은)
취미: 골프, 볼링

박수성 기자 [mercu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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