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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마음이 텅 비다

마음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마음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마음을 잡고, 마음을 두고, 마음을 비우는 게 그렇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생각들 때문에 마음에 오히려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아프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전헌 선생님과 새해, 말에 관한 말씀을 나누다가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새해는 일 년에 한 번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오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새롭게 듣자 몸도 새롭게 느끼네요. 해마다 새해, 날마다 새날, 말마다 새말, 몸마다 새 몸, 새롭지 않은 게 하나도 없는데 깜빡깜빡 놓치고 깜짝깜짝 놀라네요. 늙기도 마냥 새롭고, 몸도 마냥 새롭고, 복도 마냥 새롭고, 기쁘고 고맙기도 마냥 새롭네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새롭지 않은 게 있을까 봐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늙기도 마냥 새롭다는 부분에서 웃음도 나고 감동도 밀려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많은 일도 그저 새로운 일입니다. 새로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일이죠. 그래서 기쁘고 고마운 일입니다. 이해가 쉽지 않지만 그게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늙어 본 일, 처음 아파 본 일 등 우리에게는 힘든 새로움도 많습니다. 새로움은 반가움이기도 합니다.

저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을 들을 때 ‘평화, 사랑’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좋은 말씀은 들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분께 말씀을 청합니다. 말씀이 귀하다는 생각이 들 때 행복을 느낍니다. 말씀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싸우지 말고 말로 하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말은 이렇게 우리를 평화 속에 있게 하고, 사랑하게 합니다.



선생님은 말에 대해서도 답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답을 보면서 저는 제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랜 수수께끼가 문득 절로 풀렸습니다. 말이 사랑이네요. 처음엔 말이 있었다. 말이 몸 된다. 말사랑. 사랑 말. 몸사랑. 사랑 몸. 마음이 텅 비니까 시원합니다. 사랑이 마냥 늘 새롭네요.” 말은 사랑입니다. 우리 몸도 사랑입니다. 사랑해서 말을 하고, 우리 몸이 사랑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마음이 텅 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마음이 텅 빈다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무언가 항상 우리 마음속에는 짐이 되는 생각이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마음이 답답했을 겁니다.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많으니 자유롭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버릇처럼 마음을 비우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라고도 합니다. 내려놓는다고 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우리는 마음을 들고 다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겁다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허심탄회라는 말보다 마음이 텅 비니까 시원하다고 느낌대로 말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텅 비는 게 생각입니다. 아니면 먼지투성입니다.”라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무엇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사실은 텅 비는 게 생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먼지투성이일 뿐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또 어려워졌습니다.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머리로는 또 이해가 안 됩니다. 제 머릿속에 먼지투성이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저도 마음을 비우고 싶다고 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마음은 내버려 두셔도 그냥 빕니다. 염통이 비어야 피가 돌지, 살이 들면 염통이 막히듯 산 몸의 마음은 늘 비어있습니다.”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이번 답은 약간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살짝 웃음이 났습니다. 이제 저도 선생님의 말씀에 익숙해지고 있나 봅니다. 선문답하듯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모르는 게 많아져서 기쁩니다. 몰라서 답답한 게 아니라는 게 좋습니다. 한참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딴생각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을 내버려 두고 있었나 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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