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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정](5) 죽으려 스쿠버다이빙 하다 살길 찾다

박용필 / 전 논설고문
박용필 / 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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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1/01/28 미주판 6면 입력 2021/01/27 19:07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3화> 국군포로에서 아메리칸 드림까지 토마스 정
<5> 인조모 가발에 밀려 파산하다

토마스 정 회장은 맞춤가발로 재기했다.&#60419;맞춤 가발을 제작 중인 직원이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심고 있다. 김상진 기자

토마스 정 회장은 맞춤가발로 재기했다.맞춤 가발을 제작 중인 직원이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심고 있다. 김상진 기자

5525 윌셔 불러바드에 있는 &#39;히스 앤드 허 헤어 구즈&#39; 본점 건물. 김상진 기자

5525 윌셔 불러바드에 있는 '히스 앤드 허 헤어 구즈' 본점 건물. 김상진 기자

성공의 어머니는 실패가 아니라 자기성찰
맞춤가발로 재기…파리 유명인사도 주문


신문사로부터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로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지만 솔직히 내겐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다. 세상에 드러내기 부끄러운 그런 과거다.

창피스런 과거 중 하나가 ‘스쿠버 다이빙’이다. 혹 내가 돈자랑 내지는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지레 짐작하겠지만 천만에. 나는 홀딱 망하고 나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다.

1969년 8월 쯤이다. 샌타모니카 비치에서 태평양 바다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괜히 유학을 와 가지고…. 세관에 그냥 눌러앉았으면 지금쯤 룰루랄라 잘 지내고 있을텐데.’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아 후회막급이었다.

LA로 돌아오는 길에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스쿠버다이빙 아카데미.’ 무엇에 홀렸는지 무작정 들어갔다. 매니저와 마주 쳤는데도 애써 나를 무시하는 듯 했다. 아마 스쿠버다이빙을 백인들의 전유물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싶다고 말을 걸었는데도 말투가 아주 퉁명스러웠다. 다짜고짜 ‘몇 살이냐’고 묻는 거였다. 그때 내 나이 50줄이었으니…. 매니저는 아무말 없이 손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나가라’는 제스추어였던 것. 그때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를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그제사 나를 딱하게 여긴 매니저가 조건부로 입학을 허가해줬다. 첫째는 ‘고령자’여서 정식 라이선스는 못내주겠다는 것. 그리고 사고가 나도 아카데미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

스쿠버다이빙은 수중 호흡기를 지니고 잠수해 체력을 단련하는 스포츠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자칫 심정지를 일으켜 물 속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2인1조로 훈련을 한다. 서로 감시하기 위해서다.

훈련생들은 모두 짝짓기를 했는데 나와 어느 뚱보여성 둘만 남았다. 나는 동양인이어서, 뚱보는 위험유발자로 간주했는지 기피인물로 찍혔던 것. 결국 우리 둘은 의도치 않게 파트너가 됐다. 그래도 우리는 호흡을 잘 맞춰 4주과정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잠수훈련 중 전복을 따는 재미도 쏠쏠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스쿠버다이빙을 하게 된 동기는 바닷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기 위해서였다. 삶의 의욕도 없고, 비즈니스 재기의 희망도 없고.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장소로 바닷속을 택한 것이다. 숨기고 싶은 얘기지만 용기를 내 글로 남긴다.

평생 꽃길만을 걸을 것 같던 가발사업이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일본산 인조모 가발이 시장에 범람하는 바람에 비즈니스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합성섬유로 만든 가발은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 가격면에서 인모 가발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쌌다.

고객을 인조모 가발에 빼앗긴데 이어 한국공장에서 말썽이 생겼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 은행빚에 내몰려 더 이상 비즈니스를 꾸리기가 불가능했다. 보다 못한 유대계 고문변호사가 내게 파산신청을 적극 권했다. 수임료를 받지않겠다면서다.

법원이 내 파산신청을 받아들인 날 샌타모니카의 스쿠버다이빙 아카데미를 찾은 것이다. 죽겠다는 심정으로.

그때 깨달음을 얻은 게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자기성찰이 성공의 어머니’라고 바꿔 써야 된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남의 핑계’ ‘비즈니스 환경 탓’만 하다보면 실패를 거듭할 뿐이다.

‘불굴의 기업인’ 잭 웰치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시절, 이런 말을 했다. “실패에서 배우지 않으면 성공은 결코 불가능하다.” 자기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일 터다.

스쿠버다이빙의 쇼크에서 벗어난 나는 재기에 온 힘을 쏟았다. 결과물이 바로 맞춤가발이다. 두상에 맞게 본을 뜬 다음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발의 굵기, 색상 등을 파악해서 디자인하는 방식이다. 고객 특화 가발이라고 할까.

이 부문 특허도 냈다. 아마 가발과 관련해 특허를 받은 것은 내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뉴욕 등 미 전국에서 뿐만아니라 최근엔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의 유명인사들로부터도 주문이 들어온다. 그래서일까. 60년 전 나를 가발이라는 신비의 세계로 이끌었던 맥스 팩터가 요즘 부쩍 생각난다. 당시 가발 하나에 $4,700의 가격표를 부쳐 나를 놀라게 했던 바로 그 회사다.

또 하나의 교훈은 돈과 관련해서다. 나는 ‘돈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말을 가끔 후배들에게 해준다.

1달러짜리에 답이 나와있다. 돈 뒷면엔 피라미드가 인쇄돼 있는데 13층 짜리다. 아마 독립당시 13개주를 상징하지 않나 싶다. 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만물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이 그려져 있다. ‘메시아의 눈’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글귀가 적혀있다. 잘 안보이면 확대경으로 보기 바란다. ‘아뉴이트 셉티스(Annuit Coeptis).’ 인터넷을 검색하면 뜻이 나온다. ‘신은 우리가 하는 일에 미소를 지으신다’쯤이 되겠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결국 돈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후 나는 한 눈 팔지 않고 내 비즈니스에만 전념했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유혹을 마다한채.

내 소유의 부동산은 웨스트 LA쪽 윌셔 불러바드에 위치한 3층짜리 회사 빌딩 하나 뿐이다. 100년도 훨씬 넘은 LA에선 문화재급 건물이다. 시정부의 허가 없이는 개보수도 함부로 못한다.

나는 이 건물을 볼 때마다 무한애정을 느낀다. 이곳엔 오래전 LA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세들어 살았다. 1층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2~3층은 총영사관이 렌트해 업무를 봤다. 내 건물에 LA 한인사회의 역사가 살아 숨쉰다는 생각만 해도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지.

한때 주변에선 내게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 투자를 강권하다시피 했다. 크레딧도 좋을 뿐더러 더구나 은행 대주주여서 쉽게 재원을 조달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쉽게 돈 벌 방법이 있다는데도 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신이 내 부동산 투기에 미소를 짓지 않을까 두려워해서다. 1달러 짜리 돈이 하찮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돈과 재물에 늘 겸손하라는 경구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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