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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이냐 임금이냐"···21세기 한국, 때아닌 '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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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1/02/22 12:03 수정 2021/02/22 13:33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오늘날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의 시초는 미국이다. 한국의 헌법이 의원내각제 요소를 혼합한 형태라는 점에서 미국의 대통령제와 여러 차이는 있지만 대통령이 국가원수(國家元首)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대통령제의 기틀이 만들어질 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군주제를 배척한 건 권력이 집중된 왕이 만들어내는 폐단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집행자라는 의미가 큰 ‘Governor’ 대신 회의 주재자의 의미를 가진 ‘President’를 대통령을 뜻하는 명칭으로 사용한 것도 권력 분산에 방점을 뒀다는 의미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되고 세습되지 않으며 입법부와 사법부에 의해 견제된다는 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런 역사적 연원이 있음에도 최근 정치권에선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싸고 때아닌 ‘왕’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청와대와 민주당이 문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든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들면 전 국민에게 위로금 지급을 검토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지난 19일 발언이 알려진 뒤 야권의 발언 수위는 더 높아졌다.




지난해 5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초청 오찬 행사에서 김태년(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오른쪽)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위로금 검토 발언을 거론하면서 “문 대통령은 집권 4년 만에 ‘왕’이 되어 버렸다”며 “조선의 왕들도 백성들에게 나랏돈을 이렇듯 선심 쓰듯 나눠주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호영, “文, 집권 4년 만에 왕이 됐다”

같은 당 윤희숙 의원도 앞서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이 정부는 국민에게 잠시 위임받은 권력을 완전 자신들의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청와대는 선거철 국민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돈을 뿌리겠다는 약속을 덜컥 하는 것을 보니 본인들이 절대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나 보다”고 적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은 조선 시대 왕도 왕실 돈인 내탕금으로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내탕(內帑)은 임금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던 곳으로 내탕금은 임금의 사재를 뜻한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22일 정상 출근하며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번 논란에도 ‘왕’이 등장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금태섭 의원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라며 “국민들 앞에 국정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고 적었다. 그런 뒤 “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대통령을 결부시키지 말아 달라’고 한다”며 “대통령이냐, 임금님이냐? 대통령 책임 얘기만 나오면 화를 내던 박근혜 청와대와 뭐가 다르냐”고 직격했다.

금태섭, “대통령이냐, 임금님이냐”

장외 야권 인사들의 비판은 보다 노골적이다. 특히, 문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인 이른바 “문빠”를 향한 비판이 그렇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싫어했던 이유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왕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정부를 조선왕조 모시듯 한다”며 “문 대통령은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민망하지 않나”라고 했다.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여권에서도 때때로 문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곤 한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총선 승리 뒤인 지난해 5월 유튜브에 공개된 동영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태종 같은 것이다.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이었다면,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왔다”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설치법이 통과된 뒤 페이스북에 “과거 기득권 세력이던 노론은 개혁 군주 정조의 모든 개혁 법안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다”며 “하지만 정조는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문재인 대통령과 야당을 각각 정조와 노론에 비유한 것이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2월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모습. 중앙포토






물론 야권이 문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할 때 여권이 주로 꺼내는 단어는 ‘국가원수 모독’이다.

26일 시작되는 코로나 백신 접종의 안전성 문제가 논란이 되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 야권에선 “문 대통령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호 접종자가 돼라”는 요구가 나왔다. 그러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이냐. 이는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이자 모독”이라며 “문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은 대통령을 뽑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2019년 3월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북한 문제를 거론하며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을 때도 민주당은 “국가원수 모독”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었다.

특히,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국가원수 모독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가 오히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흔히 ‘국가원수 모독죄’로 불리던 형법의 ‘국가 모독죄’는 민주화 이후인 1988년 폐지됐기 때문이었다.

이해찬, 폐지 30년 넘은 ‘국가원수 모독죄’ 언급도

이처럼 문 대통령에 대한 여야의 인식차가 점차 커지는 이유는 뭘까. 김형준 명지대(정치학) 교수는 “대통령은 갈등 조정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국 정치 문화에서는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지만 책임을 안 지는 경향이 있다”며 “과거에도 그랬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더 강화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민감한 갈등 사항에 대해선 침묵하고 나서지 않는 반면 좋은 일에 대해선 앞에 나선다는 인식이 야권에 퍼져 있다”며 “그러다 보니 대리 갈등(proxy conflict)이 생겨나고 여야가 싸우게 된다”고 분석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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