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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바람 풍(風)

예전 사람들은 공기(空氣)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어있다고 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한편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숨을 마시는 일은 비어있던 공간에서 무언가가 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무언가가 내 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비어있지만 무언가 있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세상입니다. 공기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을 깨닫는 시작입니다.

공기는 스스로는 보이지 않으나 흐름이 느껴지고 나무나 풀의 흔들림으로 거기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바람이라고 합니다. 바람이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풍경(風景)’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풍경은 고정된 모습이라기보다는 흐름을 나타냅니다. 경치와는 느낌이 다릅니다. 풍경은 세상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꽃잎이나 나뭇가지, 나뭇잎이 들려주는 소리들, 호수나 연못에 바람이 일으킨 파문은 모두 풍경입니다. 자연의 모습을 풍경이라고 하는 것은 흐름과 변화가 사는 모습이고 참모습이라 생각해서일 겁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풍경에는 새소리도 포함되고, 빗방울이나 눈송이도 함께 합니다. 회화적 이미지 외에도 청각도 촉각도 함께합니다. 그야말로 모든 감각이 느끼는 세상인 겁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흘러감이 느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사물을 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바람은 느낌입니다. 아마 바람이 없다면 우리는 그냥 빈 공간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공기(空氣)라는 말은 비어있는 기운의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는 바람은 비어있음에서 일어나는 기운입니다. 바람은 그대로 기(氣)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바람을 우리는 입김이라고도 합니다. 김은 수증기와 만나서 하얀 모습을 드러냅니다. 입김으로 우리는 바람의 흐름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연기도 바람의 흐름, 공기의 흐름을 보여주죠. 연기(煙氣)도 기입니다. 김은 그대로 기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김을 한자로 하면 기(氣)가 됩니다.

어떤 일을 ‘하는 김에’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김은 ‘하는 기운으로’라는 의미입니다. 기운은 힘이기도 합니다. 기운이 없다는 말은 힘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기운을 내라는 말이나 힘을 내라는 말은 같은 의미입니다. 이렇게 바람은 기운이 되어 흐르고 우리를 감쌉니다. 때로는 숨을 들여 마시면 우리 속에 들어와 기운이 됩니다. 내 속을 도는 김은 힘이 됩니다. 큰 숨을 쉬고 기운을 내는 것이 바로 힘을 내는 것입니다. 힘을 내기 위해서는 숨을 제대로 쉬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람이 없었다면 차가움이나 뜨거움, 시원함이나 따뜻함을 알기 어려웠을 겁니다. 바람은 온도를 담고 있습니다. 엄마의 입김은 따뜻한 온도이자 위로입니다. 추운 날에는 언 손을 녹이고, 힘든 날에는 닫힌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바람은 느낌이고, 바람은 기운이고, 바람은 김이고, 바람은 기이고, 바람은 힘이고, 바람은 위로입니다.



바람은 한자로 풍(風)입니다. 한자어 풍은 바람의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줍니다. 풍이라는 표현은 한자어에서 다양하게 쓰입니다. 풍은 흐름이나 유행, 양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유럽풍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유럽에서 유행한, 유럽 양식의 무엇을 떠올리게 됩니다. 풍은 주로 우리네 삶을 표현할 때 친근하게 다가오는 한자입니다. 풍이 쓰이는 단어를 보면서 우리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풍습이라는 말이나 풍속이라는 말에서는 민중의 삶이 느껴집니다. 풍에는 민중의 신명 나는 삶과 관련된 표현이 많습니다. 특히 예술 그중에서도 음악에 관련된 표현에 풍이 많이 들어갑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용어도 풍을 중심으로 다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농악을 ‘풍물(風物)’이라고 하는 것처럼 민요를 ‘풍요(風謠)로 바꿀 수 있습니다. 풍요는 한 지방의 풍속을 읊은 노래로 정의됩니다.

바람과 풍의 의미를 바탕으로 우리의 공연을 풍류(風流)로 정의하면 앞에서 언급한 바람, 풍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우리의 멋과 맛이 담긴 공연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풍류는 돈으로 하는 화려함이 아니라 멋으로 하는 것입니다.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멋입니다. 바람 풍이 보여주는 우리의 세상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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