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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가슴과 어깨에 벚꽃을 꽂고 희생 다짐하는 18세 조종사

[LA중앙일보] 발행 2009/10/03 미주판 6면 기사입력 2009/10/02 20:56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창경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나라를 빼앗긴 왕조의 궁궐에 우리가 즐비하게 들어서자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혔던 창경궁의 옛 역사는 동물들의 울음 속에 묻혀버렸다.

일본을 상징하는 수천 그루의 벚나무도 궁 이곳저곳에 심어졌다. 70년대까지 '창경원 밤 벚꽃놀이'는 하루 20만의 인파가 몰릴 만큼 큰 축제였다. 83년 창경원은 다시 창경궁이 되었고 벚나무는 들어내졌다. 그러나 진해 군항제에서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까지 상춘객들이 넘쳐흐르는 오늘 벚꽃놀이는 우리 생활 깊숙이 배어든 일제 유산이 되었다.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사랑으로만 살기 원했듯 사랑으로만 죽는 것도 좋습니다/ 벚꽃처럼 화려한 절정에서 한꺼번에 이 세상 모든 게 져내려도 좋습니다." 김하인이 벚꽃에 비긴 사랑예찬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는 꽃비 속을 거닐던 30년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가슴을 사랑으로 한껏 달뜨게 놓아두지 않았다.

태평양전쟁(1941~45) 당시 가미카제 전투기는 미군 함대를 향해 꽃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벚꽃을 가슴과 어깨에 꽂고 희생을 다짐하던 18세짜리 앳된 조종사의 사진이 애처롭다(출처: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오오누키 에미코 저 이향철 역 모멘토). 그때 조선의 젊은이 11명도 '대동아 공영'의 미명 아래 사지로 내몰렸다.

일본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 후소샤판과 지유사판 왜곡 교과서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군국의 가치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 "천황 즉 일본을 위해 져라." 국가라는 전체를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하라고 말이다.

벚꽃이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 모티브로 다시 부상할 것 같은 오늘이다. 그래서 난분분 난분분 떨어져 내리는 벚꽃의 향연을 마음 편히 즐기기 쉽지 않다.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밥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 갈 일이다." 황지우의 시구처럼 벚나무 아래서 더 머물고 싶은 게 봄날을 즐기고 싶은 모든 이의 마음인데 말이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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