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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도전·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으로 ‘뉴스타 신화’

[LA중앙일보] 발행 2021/03/22 미주판 4면 입력 2021/03/21 22:00

'사업가' 남문기
남문기 뉴스타 회장<1953~2021>

고 남문기 회장이 2006년 5월에 치러진 제 28대 LA한인회장 선거에서 승리가 확정된후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중앙포토]

고 남문기 회장이 2006년 5월에 치러진 제 28대 LA한인회장 선거에서 승리가 확정된후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중앙포토]

고남문기 회장이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재외국민위원회 자문위원장 자격으로 재외선거 유권자 등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중앙포토]

고남문기 회장이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재외국민위원회 자문위원장 자격으로 재외선거 유권자 등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중앙포토]

훈장 댁 아들, 행정학과 졸업생, 해병대 예비역, 주택은행 직원…. 고 남문기 회장은 한국에서의 평안한 삶을 뒤로하고 1982년 홀연히 미국으로 건너왔다.

막 도착한 이민자가 선택한 첫 직업은 청소업. 건물 바닥을 거울처럼 닦자 사장이 화들짝 놀랐다. 팀장으로 승진해 회사 매출을 30배 이상 늘려줬다. 본인이 회사의 사장처럼 4년을 일한 뒤에 사표를 냈다. 만류하는 사장은 “미국에 온 내겐 더 큰 꿈이 있다”고 떨쳐냈다.

사실 남 회장은 바닥을 닦으며 부동산업의 매력을 발견했다. 거대한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큰 규모가 마음에 들었다. 스스로 돌아보면 대학 학생회장을 지내며 직접 확인한 본인의 협상력과 추진력에 자신이 있었다. 군에서는 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기고 불가능이 없는 ‘해병대 정신’을 체득했다. 은행에서는 화끈하고 자상한 그의 성격에 고객들이 줄을 섰었다. 한국에 남기고 온 것들이 전혀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뉴스타부동산 그룹의 시작은 1988년 9월 15일로 기록됐지만 남 회장 부부는 한 해 전인 1987년 헌팅턴비치의 한 회사에서 부동산업에 투신했다. 남 회장과 부인 제니 남은 부부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이듬해 각종 로컬 협회에서 선정하는 최우수상을 휩쓸었고 드디어 가든그로브에서 뉴스타부동산을 창업했다.

‘남문기’란 이름은 짧은 시간 내에 하나의 브랜드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신문 광고는 물론, 버스 정류장과 크고 작은 광고판에 본인의 얼굴과 이름을 새겨 부지런히 알렸기 때문이다. 경북 의성에서 조부와 부친이 훈장인 한학자 집안의 자손이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신문을 볼 정도로 깨인 집안에서 익힌 미디어의 힘을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무엇보다 부동산은 낯이 익고 친숙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그의 분석은 주효했다. 남 회장은 고객이 맡긴 집의 묵은 때를 벗겨주고 잔디도 깎아주면서 좋은 입소문을 탔다. 이듬해 소속된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남가주 지역 최우수 오피스로 선정된 것은 결코 운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는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넥타이와 금장 시계를 직원들에게도 주입시켰다. 회사 로고가 새겨진 셔츠와 재킷을 입히며 남 회장은 에이전트 양성의 새로운 꿈을 꿨다. 그리고 1991년 뉴스타 부동산학교를 설립해 현재까지 4곳에서 30년간 수많은 한인 에이전트들을 키워냈다. 특히 에이전트의 자질 향상을 위한 실전 적용 교육, 일대일 현장실습교육과 각종 세미나, 재교육 등은 지금도 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1990년대 후반은 뉴스타 부동산이 남가주에서 네트워크를 넓힌 기간이다. 1996년 LA지사 설립 후 본사를 아예 LA한인타운으로 이전했고, 1997년에는 토런스·세리토스에 지사를 세웠다. 이어 1998년 플러턴, 1999년 어바인·글렌데일·로랜하이츠 등으로 지사망을 넓혔다.

2000년대 초반 밸리, 라캬나다, 랜초쿠카몽가, 팔로스버디스, 치노힐, 리버사이드 등지로 지사를 확대한 뉴스타부동산은 2004년을 기점으로 전국 영업망 확대에 나섰다.

남 회장은 2002년 간경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2004년 라스베이거스와 덴버에 지점을 낸 뒤 이듬해부터 시애틀, 플로리다, 뉴욕, 애리조나는 물론, 한국에도 뉴스타 지사를 설립했다, 현재 뉴스타부동산은 LA한인타운 본사와 지사 등 30여 곳에 지사망을 두고 있다.

산하에 에스크로, 건물관리회사, IT 회사, 광고기획사, 투자그룹사, 부동산학교는 물론, 뉴스타 문화공간 등을 두고 뉴스타 부동산 그룹으로 성장했다.

또한 20년간 뉴스타 장학재단을 운영하며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뉴스타부동산은 1000여명의 에이전트와 직원을 거느리며 대형 부동산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연간 1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톱 에이전트도 매년 300명 이상 배출된다.

남 회장은 생전에 “목표 없는 인생은 표류하는 배와 같고 언젠가 침몰하고 만다. 확고한 목표와 끝까지 밀어붙이는 끈기가 뉴스타부동산이 발전해 온 성공의 비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창업 이후 33년 뉴스타부동산이 보여준 발전상은 미주 한인 부동산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 모델로서 새롭게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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