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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칼과 숟가락

칼은 전쟁의 도구이고 숟가락은 식사의 도구입니다. 둘은 전혀 쓰임이 다른 도구로 보입니다. 물론 때로는 식탁 위에 칼과 숟가락이 동시에 오르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식탁에서는 어색한 장면입니다. 칼이 식탁에 오르는 이유는 원하는 크기로 직접 잘라 먹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미리 음식을 잘라서 식탁에 올립니다. 문화에 따라 이렇게 배려의 방향이 다릅니다.

숟가락은 기본적으로 무기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우화를 보면 숟가락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래 이야기의 근원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숟가락으로 먹는 장면을 보면 우리 문화와 가까운 듯합니다. 다른 문화의 식사 모습을 보면 주로 젓가락이나 포크로 식사를 합니다. 숟가락으로 식사를 하는 문화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숟가락보다는 손으로 먹는 문화가 많을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우화는 긴 숟가락 이야기입니다. 천국과 지옥에는 음식도 똑같고, 긴 숟가락도 똑같다고 합니다. 숟가락이 너무 길어서 앞에 있는 음식을 푸기도 어렵고, 그 음식을 자기 입으로 넣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긴 숟가락을 이용해 서로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입니다. 감동적이지요. 우화이지만 느낌이 확 옵니다. 조심조심 떠서 서로에게 먹여주는 정성도 보입니다. 가끔 음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여 떨어지기도 할 겁니다. 그러면 화가 나는 게 웃음이 납니다. 진짜 천국이네요.

지옥은 생각만 해도 지옥입니다. 긴 숟가락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려고 하니 완전히 난장판입니다. 자기 앞에 있는 음식에는 숟가락이 잘 안 닿으니 남의 음식에 숟가락을 뻗칩니다. 서로 빼앗는 것이지요. 그렇게 억지로 뜬 음식을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하니 들어가지가 않습니다. 화가 치밀어옵니다. 신경질과 짜증이 넘쳐납니다. 숟가락은 싸움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숟가락으로 서로를 때리니 여기저기에 울음소리가 납니다. 숟가락도 아픕니다. 상처가 가득합니다. 정말로 지옥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칼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은 왠지 전쟁의 도구처럼 생각이 듭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든지,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칼이 전쟁의 도구로 쓰일 일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보통 사람에게 칼이 전쟁의 무기로 쓰일 일은 평생 한 번도 없을 겁니다. 누구를 위협할 일조차 없겠지요. 우리에게 칼은 무기입니까?

칼은 대부분 요리의 도구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칼은 모습은 무서워 보이나 실제로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입니다. 칼이 없었다면 우리는 음식을 다양하게 만들어 먹지 못하였을 겁니다. 숟가락이 식사의 도구이듯이 칼도 식사의 도구입니다. 누구를 다치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닌데, 칼을 무기로 사용합니다. 칼이 무기가 되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됩니다. 맛있는 요리는 그대로 천국인데 말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 하나를 덧붙일까 합니다. 제가 전에 민속박물관에서 본 그림 이야기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지옥의 그림은 금방 예상이 되었습니다. 불에 타고, 온갖 징그러운 짐승이 있고, 온몸이 잘린 비참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럼 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바로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남편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천국을 금방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천국은 참 쉽습니다. 칼도, 숟가락도, 그리고 내 손도 모두 천국을 만듭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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