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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의미있는 삶을 살았던 두 사람

1995년 이민 온 첫 해 어느 날 LA한인타운에서 본 그의 첫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실제 얼굴을 본 것이 아니다. 버스 정류장 옆 벤치에 붙어 있는 부동산 광고에서 그의 얼굴을 봤다. 그 당시에는 그저 부동산 에이전트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라고만 알았다. 고 남문기 회장이다. 이제 지나고 보니 당시 40대 초반이었을 텐테 꽤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가 부동산 회사를 운영했지만 고객으로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기자로 인터뷰를 하면서다. LA한인회장도 마치고 한참 지난 시점인 2017년 6월이다. 이미 그해 4월에 3번째 간암수술을 받았기에 남 회장은 전성기가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힘이 넘쳤다. 당시 인터뷰는 모교인 건국대에 1억원을 쾌척한 것이 화제였다. ‘모교 아너소사이어티’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한인이 한국에 기부하면, 미국과 달리 세금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의미가 더한 결정이었다.

여느 사람들은 한 번만 걸려도 모든 것을 팽개치고 건강에 올인할 터인데 남 회장은 무려 3번의 수술을 받고도 ‘뉴스타’를 지키고 있어서, 왜 자꾸 재발하는지, 자신은 그 원인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차분히 대답했다. 잠이었다.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부동산 에이전트들의 성공을 위해서 불철주야로 잠도 못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먼 발치에서만 만났다. 한 번은 조인하 전 한인회장과의 인연을 기사로 쓰고 카톡을 했다. 점심을 함께 먹자고 약속을 했지만 남 회장과의 약속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남 회장의 평소 생각에 가장 공감했던 것은 바로 ‘한국계 미국 대통령 만들기’였다. 아마도 그와 점심을 함께하면서 나눌 주제였을 것이다. 미국에 뿌리를 내렸으니 미국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도 한국계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장학재단을 만들어 수여식에 오는 학생들에게 전했던 메시지가 있다. 그는 장학생들에게 간단한 서약서도 받았는데 내용은 ‘미국 대통령’이 아니고 10년 후에 장학금을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다.

몇 사람만 이런 캠페인을 더 벌이면 한국계 대통령은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

알고 보니 고 이재수 선생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갑이다. 비영리단체 ‘좋은만남클럽’을 만든 이유는 간단했다. 미혼 자녀의 배필 찾기에 부모들이 직접 나서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다. 매달 한 호텔에서 부모들이 자녀의 사진을 들고 모임에 참석해 자녀들의 소개팅을 주선했다. 물론 자녀들은 ‘진저리’를 쳤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있는 모임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 봉사마저 은퇴했다고 생각했을 때 이 선생이 다시 나타났다. 자신이 암수술을 받았는데 막상 닥쳐보니 환자 가족이 너무 외롭고 정보가 없어서 어려움이 많다며 모임을 만들었다고 홍보를 부탁했다. 이런 틈새 봉사를 누군가 해야 하는데 마침 이 선생이 하고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모여서 사회를 이루며 뭔가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모임이 없어서 외롭고 인생이 지루하다는 사람이 많다. 전문가들은 누구나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에 두 사람처럼 무언가를 위해 의미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두 분의 명복을 빈다.


장병희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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