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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아시안이 달라졌다

오래전 UCLA 익스텐션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는 학생들이 전 세계에서 왔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우리는 국제반이라고 좋아하던 교수는 어느 날 거의 모든 학생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Where are you from?)”라고 물었다. 누가 들어도 영어가 모국어로 보이는 일부 백인과 흑인 학생은 예외였지만 아시안 학생에겐 같은 질문을 던졌다. 결국 한 아시안 학생이 퉁명스럽고 화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이 질문에는 아시안은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래서 언제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공격으로 돌변할 수 있다.

아시안은 다른 인종과 비교해 미 대륙에서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지분이 없다는 정서는 역사에서 여러 형태의 아시안 배척으로 튀어나왔다. 필요하면 받아들이고 거슬리면 배척했다. 필요할 때는 ‘모범적인 소수계’라고 칭찬했지만 거슬릴 때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밀어냈다.

미국에서 아시안의 존재는 부정되기 일쑤였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한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공격 대상이 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시안을 향한 전국적인 증오범죄는 코로나가 기폭제가 됐지만 코로나와 함께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아시안은 미국 역사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입을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 주목받은 것만 봐도 그렇다. 연방 의원을 포함해 아시안 선출직이 많이 늘었고 산업계, 특히 IT에서 인도계가 급부상하고 ‘미나리’ 같은 영화가 오스카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이 이를 방증한다.

지금의 아시안은 이전의 아시안과 다르다. 몇몇 뛰어난 개인의 활약을 넘어서 아시안 전체의 정치적 위상과 경제적 지위 등이 주류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달리 보면 아시안이 우리로 인식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시안 공격은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증오범죄에 대처하는 아시안의 태도는 자신의 상황과 위치를 자각하고 개인이 아닌 집단의 힘과 단합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피해자들은 당당하게 피해 사실을 드러냈고 사람들은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아시안 정치인은 규탄 결의안을 내고 증오범죄 방지 법안을 상정시키고 아시안 고위직 임명을 압박했다. 아시안 비즈니스 리더들은 증오범죄 방지 기금으로 1000만 달러 조성을 결의했고 아시안 스타들은 SNS 등에서 목소리를 냈으며 주류 언론에는 다양한 시각의 칼럼이 실렸다. 또 이 모든 것이 미국적 시스템 안에서 미국적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4·29 폭동 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때 LA 한인타운은 흑백갈등의 원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불탔다. 주류언론은 흑백갈등으로 시작된 폭동을 한흑갈등으로 몰아갔고 LAPD는 LA의 끝, 베벌리힐스의 시작으로 몰려가 LA를 버리고 베벌리힐스를 지켰다. 아시안마저 외면한 불탄 타운에서 한인은 외롭게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29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아시안은 집단적 자각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다 해도 소수계는 인종 갈등 앞에 취약하다. 소수계는 소수계다. 언제 증오범죄와 같은 상황에 부닥칠지 모른다.

1993년 유대인 학살을 소재로 한 ‘쉰들러 리스트’가 나왔을 때 영화 개봉을 1991년 12월 소련 붕괴와 연계해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영화의 뒤에는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외부의 적이 사라졌으니 내부에서 적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유대계의 위기감이 있다는 것이다.

LA에는 소수계 박해를 기록한 박물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홀로코스트를 알리는 유대계의 ‘관용의 박물관(Museum of Tolerance)’, 하나는 2차대전 일본계의 강제수용소 격리를 알리는 일미박물관이다. 박물관 두 곳의 메시지는 하나일 것이다. ‘우릴 공격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우리도 4·29 폭동의 피해를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필드트립 오는 미래 세대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안유회 사회부장·국장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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