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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출신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

영화속 실제 주인공인 정한길씨 본지와 단독 인터뷰

영화 미나리의 실제 모델인 정한길씨가 가족사진을 본지로 직접 보내왔다. 앞줄 왼쪽부터 정이삭 감독(영화속 데비드) 정이슬 (엔), 뒷줄 왼쪽부터 정한길(야곱) 정선희(모니카) 이명순 여사(순자).

영화 미나리의 실제 모델인 정한길씨가 가족사진을 본지로 직접 보내왔다. 앞줄 왼쪽부터 정이삭 감독(영화속 데비드) 정이슬 (엔), 뒷줄 왼쪽부터 정한길(야곱) 정선희(모니카) 이명순 여사(순자).

한국계 정이삭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미나리> 가 전세계에 잔잔하지만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상복이 터졌다. 덴버 영화제 관객작품상, 골든글러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플로리다 영화비평가 협회 각본상, 노스 캐롤라이나 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각본상,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및 관객상 등 손에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상을 받았고, 영화에서 외할머니 역을 맡은 한국배우 윤여정씨는 지난 25일에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녀는 미국내에서만 30개 이상의 여우조연상을 휩쓸었고 얼마전에 열린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엄청난 업적을 이룬 이 영화가 사실은 단 200만달러를 들여 25일만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봉준호 감독이 정말 천재적인 감독이라며 정이삭 감독을 치켜세운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자랑스러운 영화를 만든 정이삭 감독이 사실은 콜로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 감독의 아버지이자, 영화에서 ‘제이콥'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실제 주인공 아버지인 정한길(75) 씨는 정 감독이 콜로라도주 브라이튼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정한길씨는 지난 2014년에 딸 가족이 있는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돌아와 현재는 아칸소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본지와 주간포커스는 현재 아칸소에 머물고 있는 정한길씨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와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 이야기 및 현재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한길씨는 한국에서 건국대학교 축산과에 다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단돈 200달러를 들고 1975년에 미국에 왔다. 아내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영화에서 배우 윤여정씨가 순자로 분했던 장모 이명순 여사는 6.25 전쟁 당시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남편 고 김현태씨가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하면서 전쟁 미망인으로 당시 임신 중이었던 딸 하나를 홀로 키웠다. 인천 앞바다에서 억척스럽게 조개를 캐며 딸을 키웠던 이명순 여사는 그 귀한 딸이 낳은 아이들, 특히 어린 손자 정이삭 감독을 애지중지 아꼈다. 그런 외할머니에게 애틋했던 정 감독은 몇년전 1년간 유타 대학교 인천 송도캠퍼스에서 영화학과 교수로 일할 당시 캠퍼스에서도 보이던 송도 갯벌을 바라보며 영화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서 팔았을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그 각본이 바로 영화 <미나리> 였다.
정 감독은 어릴 때부터 영특했다. 정한길씨는 영화에서 아들이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는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7살밖에 되지 않았던 아들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했던지, 처음 아칸소 시골의 허름한 트레일러 홈에 도착해 계단이 없었던 트레일러에 들어가기 위해 아이들을 번쩍 안아올려 주었던 장면부터 입었던 옷들, 집안에 있던 소품 하나하나까지 너무 똑같아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그는 영화의 디테일로만 따지면 실제와 90% 이상 흡사하다고 강조했다.
정한길씨는 영화에서 묘사한 대로 병아리 감별사로 일을 했다. 돈은 많이 받았지만 계약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이 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이오와로 왔다가 1년 만에 콜로라도로 옮겨야 했고, 그 이후로도 아틀란타, 아칸소 등지를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아칸소에 50에이커의 땅을 샀다.
영화에서는 그가 낡아빠진 트레일러 홈 앞에서 기가 차 하는 아내에게 “이곳의 흙색깔을 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실제로 정한길씨는 “삽으로 1스퀘어피트의 땅을 파서 그곳에서 지렁이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보면 땅의 비옥도를 알 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산 아칸소의 땅은 그런 곳이었다. 땅만 파면 지렁이가 끝도 없이 꿈틀거리는 비옥한 땅. 그래서 그는 그곳에서 농장을 시작했다. 25일간 촬영이 진행된 영화다 보니 모든 것을 다 세트로 재현할 수 없어 한국 채소만 키운 것으로 영화에서는 묘사되지만, 사실은 채소와 3,650그루의 한국 배나무, 100여마리의 엘크 사슴을 기른 제법 큰 규모의 농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행에서 융자를 많이 받아 재정적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정한길씨는 “땅은 생명의 원천이다. 모든 생명체는 흙에서 살고, 생명을 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도 역시 아버지는 아칸소의 50에이커 비옥한 땅에 무한한 애정과 집착을 보인다. 영화의 하일라이트인 화재 장면에서는 야채 창고만 불길에 휩싸여 전소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더 참혹했다. 배 과수원의 절반이 불에 타버린 대형 화재였고, 그 이후 병충해가 심해져 결국은 과수원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파릇한 미나리같은 두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미나리는 희망의 상징이다. 어디서든 물만 줘도 잘 자라는 미나리는 잡초처럼 끈기있게 살아남으며 번성한다. 정한길씨의 희망이었던 남매 모두 미국 토양 속에 심겨진 한국산 미나리처럼 착실하게 잘 자라 둘 다 아이비리그 명문인 예일 대학교에 진학했다.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아들이 영화로 방향을 바꾸자 실망한 아버지에게 정 감독은 “저는 영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약속했고, 르완다 내전에서 원수인 두 집안이 용서와 화해에 이르는 모습을 혼자서 카메라 들고 찍은 정이삭 감독의 첫 영화 <문유랑가보> 를 비롯해 <미나리> 까지 총 4작품 모두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정한길씨에게 처음에 가족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말을 듣고 어땠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뭐 할 얘기가 있다고 그걸 영화로 만드느냐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나한테 한소리 들을까봐 무서웠는지 영화 시나리오를 쓸때부터 영화를 찍는 동안 나를 아예 영화촬영장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미나리 길러놓은 것만 사람 시켜서 싹 파다가 영화촬영지에 심어놓았더라. <미나리> 는 나한테 혼날까봐 몰래 찍은 영화"라고 웃었다. 그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추수감사절에 LA에 있는 아들 집에 온가족이 모여 함께 영화를 봤다. 아들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먼저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는데, 나중에 내가 ‘이걸 영화라고 만들었냐'라든지 ‘부모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딴 영화를 만들었나’라고 할까봐 많이 떨었다고 고백하더라.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까 지난 살아온 날들이 생각나 너무 슬펐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말했다.
딸 정이슬(미국명 레슬리 정)씨 역시 예일대를 졸업해 의사 남편과 함께 현재 콜로라도에서 큰 피부과 클리닉 7개를 운영하며 사회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정이슬씨는 자신이 낳은 아이 3명과 입양한 아이 1명 등 총 4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으며, 홍콩계 아내와 결혼한 정이삭 감독은 슬하에 초1짜리 딸 한명을 두고 현재 LA에서 살고 있다.
영화에서 전소되어 버린 창고 앞에서 정한길씨는 마냥 망연자실하게 절망만 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데리고 장모님이 심어놓은 미나리 밭에서 미나리를 수확하기 시작한다. 희망의 시작이다. 미나리로 그는 다시 일어날 발판을 만들고 있었다.
정한길씨는 “영화 <미나리> 는 오늘날의 자신이 있게 한 부모님과 외할머니에 대한 헌정영화이다. 또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새옹지마’,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를 나타내주는 희망의 영화이다. 유별난 흙 사랑으로 무모하게 농사에 도전한 남편을 떠나지 않고 함께 살면서 근검절약하며 아이들을 잘 키워준 아내가 사실 일등공신이고, 평생 그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교민들께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도 곧 지나갈 것이다. <미나리> 를 통해 다시 희망을 갖고 재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그의 가족들은 영화가 공개된 이후 수차례에 걸쳐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중심으로 극장을 통째로 사서 소방관, 경찰관, 의사, 간호사 등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게 영화티켓을 선물해 영화 <미나리> 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를 실시해 약 250여명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정한길씨는 “기회가 된다면 덴버에서도 이런 분들, 한국전 참전용사 등에게 영화티켓을 선사해 <미나리> 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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