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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남성’ 아이콘…우정 넘어 동성애 소문 무성

같은 해 사망 헤밍웨이-게리 쿠퍼 60주기
사냥·파티·반항아·창의성 등 많은 공통점
‘누구를 위하여…’ 쿠퍼 모델로 소설 구상

사냥에 나선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와 게리 쿠퍼. 두 사람은 1940년 아이다호 사낭터에서 처음 만났다.

사냥에 나선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와 게리 쿠퍼. 두 사람은 1940년 아이다호 사낭터에서 처음 만났다.

말년의 헤밍웨이와 게리 쿠퍼. 각기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말년의 헤밍웨이와 게리 쿠퍼. 각기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게리 쿠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에 출연하며 명성을 올렸다. 1932년작‘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게리 쿠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에 출연하며 명성을 올렸다. 1932년작‘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7년작‘무기여 잘 있거라’

1957년작‘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에 출연했던 게리 쿠퍼는 절친한 친구 관계였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1961년 같은 해에 사망, 올해로 사후 60주기를 맞는다. 주변의 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우정과 위안을 서로에게서 찾았던 두 사람은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당대의 아이콘이었으며 또한 강한 남성상의 상징이었다.

1899년 태생인 헤밍웨이는 쿠퍼보다 12살 위였다. 1940년 아이다호주 선밸리 사냥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대조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반면 유사한 점도 많았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성장 배경 때문인지 둘 다 파티를 즐겼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늘 대화를 주도했다. 6피트가 넘는 큰 키의 두 남자는 술을 즐겨 마셨고 총과 사냥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창의성이라는 면에서 주변을 감탄시켰다. 전형적 중산층의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란 이들은 부모들이 원했던 ‘젠틀맨’이 되기를 거부하며 반항아로 성장했다.

이러한 유사점과 창의적 천재성이 서로에게 매료되게 했던 동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다르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두 사람이 동성연애 관계였다는 루머는 실제로 할리우드와 상류층 사교계에 끊임없이 떠돌아다녔다.



1925년 무성영화 ‘몽상의 낙원(The Winning of Barbara Worth)’으로 데뷔하여 35년간 미국 영화계를 풍미했던 쿠퍼는 무성영화 시대를 종결한 장본인이었으며 존 웨인과 서부극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미국적인 미남 배우’로 더 유명세를 떨치며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생 115개의 영화에 출연했고 ‘요크 상사’(1941)와 ‘하이 눈’(1952)으로 2차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전후의 ‘잃어버린 세대’가 주조를 이룬 근대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활동한 헤밍웨이는 자신이 저널리스트로 직접 경험한 전쟁을 소설로 옮긴 두 편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한다. 두 편 모두 영화로 제작되고 쿠퍼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1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만난 미국인 의무병 헨리 중위(쿠퍼)와 영국인 간호사 캐서린(헬렌 헤이즈)과의 사랑을 그린 1957년작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는 헤밍웨이가 19세 때 이탈리아 야전병원에서 의용군으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소설이다.

1929년에 출간되면서 헤밍웨이를 미국 최고의 문학가로 올려놓은 이 작품은 1932년 쿠퍼를 헨리 중위로 캐스팅하여 영화화되었고 그해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등 4개 부문에 올랐다.

영화는 전쟁에 절망하고 사랑에 유일한 희망을 걸어 보지만 그마저도 이루지 못하는 허무주의와 패배감으로 차 있는 원작의 분위기 대신 센티멘탈한 로맨스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쿠퍼는 그가 출연한 영화들에서처럼 실제 삶에서도 잘 생기고 성격 좋은 호남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쿠퍼가 연기한 헨리 중위는 당시 많은 여성들에게 ‘결혼하고 싶은 남자상’으로 떠올랐다. 만인의 연인이었던 쿠퍼 역시도 수많은 여인과 염문을 뿌렸다.

스페인 내전에서 활약하는 미국인 청년 로버트 조던의 이야기를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43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이 소설은 헤밍웨이가 쿠퍼를 위하여 쓴 소설이나 다름없었다. 헤밍웨이는 처음부터 쿠퍼를 주인공 조던의 모델로 삼고 소설을 구상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화되는 과정에서도 쿠퍼가 조던 역을 맡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쿠퍼의 상대역 마리아로 잉그리드 버그먼이 출연했다.

쿠퍼는 1960년 4월 전립선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미 온몸으로 암이 전이된 상황이었다. 아카데미상 위원회는 그해 쿠퍼를 특별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쿠퍼의 절친한 친구 제임스 스튜어트가 쿠퍼를 대신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올랐고 이 자리에서 쿠퍼의 위독 상태를 알려 온 미국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쿠퍼의 병세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결국 1961년 5월 사망한다.

그의 친구 헤밍웨이는 이 시기 잇따른 비행기 사고, 극도의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성격, 불화가 잦았던 대인관계, 전쟁에서 겪은 일들로 인한 트라우마는 헤밍웨이의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준 요인들이었지만 그 자신의 삶에도 감당할 수 없는 일들로 작용하며 비극적 종말을 예고했다.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2일 권총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쿠퍼가 세상을 떠난 지 채 2달이 안 된 시기였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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