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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괜찮아”

지난주에 황당한 메일을 받았다. 대학 대선배님 부인께서 보내신 것이다. 내용은 급히 부탁할 게 있으니 메일 받는 즉시 연락 달라는 내용이었다. 워낙 존경하는 대선배님의 함자에 눌려서, 더불어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선배님이 나한테까지 연락을 하셨을까 싶어서, 곧장 답장을 드렸다. 그간 연락드리지 못한 간곡한 사과와 인사를 진심을 다해 담았다. 다시 온 메일은 조카가 생일이라 카드를 보내야 하는데, 지금 여행 중이니 내가 구글 카드를 만들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가 좀 똑똑하다면 이때 스팸메일임을 알아봤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오로지 선배님에 대한 의리로 구글 카드가 무엇인가요? 구글 카드가 따로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조카의 성별과 나이를 알려주시면 생일카드를 사서 보내드릴 수 있다는 첨언도 잊지 않았다. 세 번째 온 메일은 카드는 300불 액면 현금카드로, 그런 카드는 어느 상점에서나 만들어 준다, 그걸 만들어 보내주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번쩍! 정신이 든 것은 300불짜리 현금카드 얘기에서였다.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그 선배는 나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분이다. 그리고 부탁할 일이 있으면 자녀분들이나 친구분들에게 하시겠지 생뚱맞게 내게까지 민폐를 끼칠 분이 아니시다. 더군다나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인터넷을 통해 사고 보내고 하는 시대 아닌가. 그들이 보낸 문장은 예의 없고, 짧고, 서툴렀다. 조금만 주의 깊게 읽었어도 스팸메일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뇌가 퇴보했나? 스팸메일에 놀아난 자신에 대한 한탄과 자괴감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마침 그 무렵 용수 스님의 “진정한 자유란 ‘괜찮아’ 입니다”란 글을 읽었다. ‘있어도 괜찮아, 없어도 괜찮아. 해도 괜찮아, 안 해도 괜찮아. Yes도 괜찮아, No도 괜찮아, Maybe도 괜찮아. 나도 괜찮아, 당신도 괜찮아, 세상도 괜찮아.’ 여기까진 별 생각 없이 쉽게 읽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분별이 없는 게 아니라 집착이 없는 거예요. Yes! OK! 좋아! 괜찮아! 마음을 열어보세요.”, 하는데 마음을 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하긴 세상사가 어떻게 괜찮기만 하냐고.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구름이 흐르듯 지나갈 일인데. 바람에 실려 보내도 되는데. 매사에 일희일비(一喜一悲 )는 기실 인간의 도는 아니지.

요즘 광고 이메일이 수없이 많이 온다. 스팸으로 분류해도 여전히 온다. 전화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전화들이 와서 발신자 차단을 해도 비슷한 전화번호로 계속 온다. 참 어지간들하다. 물론 그런 전화들이야 기계로 설치해서 모든 곳에 보내는 것이겠지만, 받는 우리는 귀찮고, 짜증 나고, 그런 반복되는 방해가 스트레스가 된다. 그런데 괜찮아, 괜찮아, 지우면 되지, 하면서 가볍게 지우면 기분도 가벼워지고 더는 그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 스트레스 쌓일 걱정도 없다.



그래서 요즘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괜찮아! 가 되었다. 냄비를 태우고도 괜찮아. 더 조심하면 되지, 야채 썰다가 손을 베어 피가 나도 괜찮아, 일회용 반창고 붙이면 돼. 우산을 잃어버리고도 괜찮아, 여분의 우산이 있잖아. 도둑을 맞고도 괜찮아,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 빈손이었다잖아, 어쭙잖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 자신을 달랜다.

마음이 저절로 열리는 느낌이 든다면 웃기나? 자유로워졌다면 웃기나?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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