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노년을 위한 공부
이종호/J-퍼블리싱 본부장
건(健)은 건강이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법. 당연히 노년 행복의 첫째 요건이다. 처(妻)는 옆에서 돌봐 주는 배우자를 말한다. 여자들에겐 부(夫)가 되겠다.
재(財)는 비루하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재산을 말한다. 사(事)는 일이다. 나이 들어도 일이 있어야 생활 리듬을 잃지 않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붕(朋)은 친구를 말한다. 말년의 외로움을 덜 수 있는 것은 자식도 아니고 이성도 아니고 오직 친구라는 말이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물리적인 것이다. 그러니 이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해 보인다. 나이가 들면 그에 걸맞은 지혜까지 곁들여져야 진정 복된 노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지 더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양보 겸손을 뜻하는 양(讓)이다.
노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때를 알아 물러설 줄 아는 마음가짐이다. 비움으로써 생겨나는 아량과 너그러움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끝까지 나만 옳다고 우기는 일 여전히 무엇인가 챙기려 아등바등 매달리는 일은 노추(老醜)의 전형이다. 나이 먹고도 설 자리를 몰라 계속 엄벙덤벙 헤매는 것 갈수록 더 인색해지고 용렬해져서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것 역시 아름다운 노년과는 거리가 멀다.
예전엔 나이가 들면 누구나 현자(賢者)가 되고 저절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 보니 착각도 그만한 착각이 없었다. 인생의 지혜란 고통스런 자유로움을 걸어간 뒤에 남겨지는 발자국 같은 것이라고 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하나님의 은총을 눈물로 간구한 끝에 비로소 지혜자가 되었다. 세월 따라 거저 얻어지는 계급장이 아니라 쉼 없이 자신을 갈고 닦고 비우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훈장이 노년의 지혜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60이 넘고 70이 넘은 분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어영부영 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노년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이 말은 준비할 겨를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는 회한의 고백이다. 머지않아 노년이 될 40~50대들에겐 하루라도 빨리 노년 공부를 하라는 일깨움이기도 하다.
소노 아야코라는 일본 작가가 쓴 계로록(戒老錄)이라는 책이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제목의 한국어로도 출간되어 인기를 끌었다. 이 책엔 노인 뿐 아니라 40~50대도 함께 읽고 새기면 좋을 경구들이 가득 차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 것 / 지난 얘기는 정도 껏 할 것 / 젊은 세대는 나보다 바쁘다는 것을 명심할 것 / 노인이라는 사실을 실패의 변명거리로 삼지 말 것 / 나이가 많다는 것이 지위도 자격도 아님을 자각할 것 등등.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준엄한 가르침은 역시 양보와 비움에의 권면이다.
내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지 말 것 / 가진 물건을 줄여 나갈 것 / 노년의 가장 멋진 일은 화해임을 명심할 것 /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긍정적으로 돌아보며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늘 심리적 결재를 해 둘 것….
겨울이 깊어 가고 있다. 자연에만 겨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도 겨울이 오고 노년도 닥쳐 온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그 때를 대비해 나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다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우리 모두 한번 쯤 던져 보는 질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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