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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희망을 쏜다-워싱턴] 버지니아 주하원의원 마크 김

"한인사회 덕분에 승리…목소리 전하겠다"
400년 주 역사상 아시안으로는 첫 당선
교육·교통 등 급한 지역현안 해결에 주력

지난 11월 3일 치러진 버지니아 지역 총선에 미주 전체 동포사회의 눈과 귀가 쏠렸다. 바로 한인으로서 주하원의원에 첫 도전하는 마크 김 후보의 당락 여부가 관심거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당 당적을 가진 마크 김 후보는 거듭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 주지사 후보 크리이 디즈의 열세 등 악재와 맞물려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마크 김 당선자의 이번 선거전은 ‘한인도 주류 정치사회에 다가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물론 정치에 꿈을 둔 후세들에게도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마크 김 당선자에게 앞으로의 정치 포부를 들어 본다.



-당선을 축하한다. 향후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 민생 현안문제다. 내가 속한 버지니아 지역 35지구는 비엔나(Vienna)라는 타운이 포함돼 있다. 최근에도 이곳 시장과 시의원 등과 면담을 갖고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일단 연초부터 6~7개 민생 관련 법안을 입법 추진하려 한다. "

-민생 현안이면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인가.

"우선 교육 문제가 대두된다. 버지니아 지역은 미국에서도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교육열이 뜨거운 곳이다. 이는 체계적인 공교육 시스템이 근간이다.

그런데 장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주정부의 예산 지원이 많이 줄게 됐다. 2010~2011년 회기 예산 발표를 보면 페어팩스 카운티의 예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략 50~60만 달러가 감소한다. 나와 뜻있는 정치인들은 교육 특별 법안을 내놓아 이같은 위기를 막아 볼 생각이다."

-당선후 한인사회 반응은.

"주하원의원 당선에 한인사회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참으로 고맙다. 그런데 어떤 정책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나는 한인 사회 개인이나 기관 단체 등을 만나면 항상 '도와드릴 수 있는 데로 다 도와드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한인 사회에는 구체적인 정치적인 이슈 등이 정립돼 있지는 않다. 내가 한인만을 위한 주하원은 아니지만 한인사회가 필요시 이용하고 도움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지난 선거에서의 승리 요인은 무엇이라 보나.

"한인사회의 힘이 컸다. 나 역시 1.5세 이민자로 한번도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은 적이 없다. 실제로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나는 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임했다. 가가호호 집을 방문하며 '나는 한인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나는 비록 소수 이민자 출신이지만 이 지역 발전을 위해 모두가 잘 사는 마을을 위해 열심히 뛸 각오가 돼 있다'고 호소했다.

정성이 갸륵했는지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가 나를 공식 지지해줬고 유력 정치인들의 지지 선언이 잇달았다."

-도전을 망설인 적이 있나.

"버지니아 페어팩스 지역은 내가 자란 토대는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이미 오랫동안 활동해 온 한인 선배들이 많다. 처음 내가 출마 결심을 했을 때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이다.

그런데 선배들은 오히려 '누가 더 오래 살았냐가 뭐가 중요하냐. 순서를 따질 필요도 없다. 정말 좋은 한인이 주류 사회에 도전하는게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해줬다. 거기서 자신감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다. 힘이 돼 준 선배들께 감사한다."

-의정 활동시 유념할 부분은.

"상대당의 표적을 두려워해 눈치 보기식 정치를 할 마음은 없다. 소신 정치를 할 것이다.

주하원에는 상당수의 민생 현안들이 법안으로 제출된다. 처리 건수도 1개월에 무려 3000건에 달할 정도다. 이중 당론이 서로 대립되는 법안은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지역 현안들이 도마위에 오른다. 여기에는 '내당 네당'이 없다. 누구든 뜻이 맞는다면 당적을 떠나 좋은 정치 파트너로 일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꿈을 이룬 한인으로서 희망의 말 한마디.

"2009년 한해는 한인 정치 신예들의 활동이 많았다. 특히 1.5~2세들이 전국적으로 10명이나 출마해 힘찬 도전을 보여줬다. 그런데 결과는 나 혼자만 됐다. 사실 성공 확률이 중요한게 아니라 도전(출마) 확률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다. 절대로 주저하지 말라. 정치에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꼭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다가오는 2010년 이후로는 미국 전국 구석구석 마다 좋은 자격을 갖춘 한인 정치인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크 김은 누구? 버라이즌 부사장 출신…오바마 대선 승리 견인

마크 김(Mark Keam)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 당선자의 아버지는 장로교단 소속 한국 육군내 군종목사로 근무하다가 월남 파병과 온 가족이 호주 이민 등을 거쳐 1980년 미국 이민까지 오게 됐다.

김 당선자는 UC 어바인(UC Irvine)에 입학,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교내 및 교외 정치활동에 관여했다. 이어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고문 변호사로 채용됐다. 이때 클린턴 정권 당시 딕 더빈(Dick Durbin) 연방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스카웃되면서 미 연방의회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2007년에는 이동통신회사인 버라이즌의 부사장직으로 자리를 옮긴 후 오바마 대통령이 버지니아 지역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김 당선자는 부인 알렉스 성 김 씨와의 사이에 7살난 아들 타일러 제퍼슨 김과 5살난 딸 브렌다 니콜 등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천일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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