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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희망을 쏜다-애틀랜타] 쉐퍼드병원 코디네이터 홍미나씨

장애 이겨내고 장애자 돕는 '희망 전도사'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죽음보다 힘들었지만…남들 생각하는 계기 돼

"휠체어에 앉아서 바라보는 세상은 나에게 암흑과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만든 그 컴컴한 감옥에 갇혀서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그 빛이 나에게 너무나 밝은 세상으로 다가왔다."

한 때 남부러울 것 없는 여자가 있었다. 9살때 미국으로 이민 와 대학을 졸업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여자는 어둠 속에 갇힌 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휠체어에 앉은 여자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말하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이 영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애틀랜타 미드타운의 쉐퍼드센터 병원에서 피어 서포트 그룹(Peer Support Group)의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홍미나(45)씨다. 자신처럼 척추 손상으로 병원에 실려 온 사람들이 바뀐 세상에 적응하고 숨겨진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1999년 2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조지아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홍씨가 운전하던 차가 전복됐다. 완벽했던 행복이 산산조각 난 그날 밤 홍씨는 끝없는 절망에 빠졌다.



"남편을 죽게 하고 아이들에게 아빠를 빼앗아 갔다는 죄책감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견딜 수 없이 괴로웠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 하느님께 수천 번 물어봤어요. 왜 나죠?"

하지만 그런 대답없는 물음보다 더욱 힘든 것은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남편을 잃고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세상은 홍씨가 그때까지 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바지를 입고 샤워를 하는 기본적인 일상 생활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하루 종일 앉아서 TV와 천장을 봤다. 그리고 2시가 되어서야 씻고 화장을 했다. 3시30분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고 2년쯤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목표를 세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1만개였다면 장애로 못하는 건 2000개. 그래도 아직 8000개는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난생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일단 아이들의 건강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쉐퍼드센터에서 사무직을 보는 어시스턴트로 취직해 지금의 피어그룹 프로그램 코디네이터가 됐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거에요. 정상적으로 살던 사람도 어느 한 순간 장애인이 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나요? 아니에요.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희망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실 세상은 낯설다. 이제 그들에게 새로운 일상(new normal)을 찾아주는 것이 바로 홍씨의 역할이고 보람이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고 '삶을 살아가는' 반석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얼마 전부터 홍씨는 장애아동을 위한 비영리단체와 조지아 주정부 기관 관계자들과 함께 모여 조직한 '한인 장애인 서포트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룹 활동을 통해 장애가 부끄러워 자신만의 감옥을 만들고 숨어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도 기회라는 것을 주고 싶어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문화 때문인지 자꾸만 장애를 숨기려고만 해요. "

그럴 때마다 홍씨는 자신의 가슴아픈 과거를 들춰 내 용기를 주려고 애쓴다.

"사고는 나에게 아픔이었지만 저를 성장하게 한 기회이자 남을 생각하고 인내심을 기르게 해 준 밑거름이 됐어요"라고 말이다.

그는 은퇴 후 지금의 남편과 함께 장애로 꿈을 포기하려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찾아 주는 것이 꿈이다.

재활 치료위해 시작한 공예 솜씨, 수공예 주얼리 업체 대표로 변신

홍미나씨는 현재 수공예 쥬얼리 업체인 디자인스 바이 미나C(Designs by Minna LLC)의 공동대표이자 쥬얼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홍씨의 작품은 전국적으로 550개 이상의 유명 부티크에 납품되고 있다.

낮에는 쉐퍼드센터에서 피어 서포트그룹 코디네이터로, 집에서는 쥬얼리 디자이너로 변신해 지하실에 꾸며놓은 스튜디오에서 쥬얼리를 만든다.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으니 두 손을 이용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시작한 비즈공예는 끔찍한 사고 덕분(?)에 발견한 새로운 재능이었다.

“취미삼아 비즈공예를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친구의 권유로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있는 인만파크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내가 만든 쥬얼리를 팔기 시작했어요.”

준비된 테이블에 스카프 몇장을 깔아놓고 만들어 놓은 쥬얼리를 펼쳐놓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틀만에 쥬얼리를 모두 팔았고, 1000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디자이너 샵이 몰려있는 벅헤드의 부티크에 홍씨가 디자인한 쥬얼리를 납품했다.

“어느날인가 친구에게 제가 만든 쥬얼리를 보여줬더니 이걸로 한번 사업을 해보자는 거에요.”

친구와 함께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있는 아메리카스 마트에서 트레이드 쇼를 기획해 디자인스바이미나를 알렸다.

“많은 돈을 벌기위해 쥬얼리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내가 만든 쥬얼리가 사람들을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글.사진=김동그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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