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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세상 지친 사람들의 속삭임…조숙진씨 150여개 의자 설치작 전시

버려지고 부러진 의자 통해 삶 조명…2월20일까지 소호 OK해리스 갤러리

"서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의 자리가 돼 드리리다/ 피곤한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을 편히 쉬게 하리다∼.”(장재남 노래 ‘빈 의자’ 중에서)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조병화 시인의 ‘의자’ 중에서)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가구 중의 하나인 의자를 소재로 한 설치작이 소호의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폐기물로 작업해온 뉴욕 작가 조숙진(49·사진)씨가 지난 16일부터 소호의 OK해리스 웍스오브아트에서 설치작 ‘의자들(Chairs)’을 선보이고 있다. 조씨가 10여년 동안 모아온 의자 150여개의 범상치않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본다.



다리없는 의자=“어떤 미국인 관람객은 잘라진 다리에서 슬픔을 느낀다고들 해요. 하지만 동양에서는 다리가 잘린 의자가 오히려 편안해 보일 수도 있지요.”

조씨는 17일 오프닝에 몰려든 관람객의 반응에 흥미를 보였다. 서양의 입식 거주문화와 동양의 좌식 거주양식의 차이에서 오는 인식의 차이다. 서양인들에게 잘려진 의자의 다리는 ‘부상’일지 몰라도, 동양인의 눈에는 방바닥에 가까워짐으로써 마침내 평온한 상태로의 진입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부서지고 상처가 난 의자들은 어쩐지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미국의 초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산지·원목·디자인·사용되던 곳이 각각 다른 의자들이 한 미술가의 손을 거쳐서 소호의 갤러리에 모였다. 조씨는 부서진 의자들로 구성된 ‘불협화음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리가 부러진 낡은 의자들이지만 다양한 디자인의 등받이 프레임과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이 숭고할만치 아름답다.

벽과 의자들=여기서 의자들과 벽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리 없는 의자들은 모두 면벽(面壁) 상태로 앉아 있다.

벽은 영화관의 스크린, 민중을 이끄는 지도자나 이데올로기, 혹은 죽음의 문턱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길목 혹은 신(神)일수도 있다.

의자들은 극장의 관객, 지도자를 추종하는 민중, 나약한 병자들의 메타포처럼 보인다. 벽 중앙의 조명은 천국의 문이나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또한 그 빛은 고도(Godot)이며 의자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분신들일 수도 있다.

조씨는 의자를 불러 모으고 뒤로 빠진다. 출생지와 배경이 다른 의자들이 집단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바로 흰 벽의 불가사의한 파워다. 상처받은 의자들에게 쾌락이나 희망을 주는 예술, 이념이나 종교로 각기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뒤로 돌아 앉은 의자들은 시련을 초월한 인간의 심성인 듯하다.

폐기물에서 미술품으로=조씨의 관심은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한 설치작이다. 쓰레기장에서 구제된 폐기물은 갤러리나 공공 장소의 전시작으로 부활한다. 기능을 다한 폐물은 ‘카르마(karma)’를 통해 제2의 삶을 얻게 된다.

조씨의 리사이클링 설치작은 친환경적이다. 그 시작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화가의 꿈을 접고 인하대 가정교육학과를 다녔던 조씨는 홍익대학원 회화과에 들어갔다. 그의 부모는 화가가 되려는 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미술재료 살 용돈이 넉넉치 못한 미술학도는 캔버스 대신 합판조각에 그림을 그리면서 폐기물을 ‘발견’하게 된다. 1987년 관훈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에도 합판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듬해 미국으로 이주해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조씨는 폐기물을 주으면서 작품의 오브제로 활용했다.

소크라테스 조각공원에서 드럼통 35개를 설치한 ‘컬러 오브 라이프’를 비롯해 나무·서랍 등 버려진 물건을 소재로 한 설치작을 전시해왔다. 지난해엔 LA문화국의 위임으로 LA 메트로 구류소에 ‘소망의 종(Wishing Bells)’을 설치했다.

▶전시일정: 1월 17일∼2월 20일.
▶OK해리스 웍스오브아트: 383 West Broadway.(212-431-3600)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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