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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기회의 땅에서

안성민/화가

미국도 한국처럼 사람 사는 곳이라 인맥이 없으면 발딛고 설 땅이 적다. 하지만 한국에선 지연이나 학연을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되는 반면 미국에서는 살면서 끊임없이 그 인맥을 만들어갈 수 있다.

소위 내가 ‘모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서 출세를 못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한국과 달리 더 ‘기회의 땅’인가보다.

볼티모어의 대학교를 졸업한 난 뉴욕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시한 그룹전 하나라도 따내기 위해 수십개의 응모서류를 보내고 수십개의 탈락편지를 받아야 했다. 하물며 가르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그런데 내 개인전 준비를 수차례 도와주던 개인 조수 크리스찬에게서 전화가 왔다. 퀸즈뮤지엄에서 ‘티칭 아티스트’를 찾는다는것이다. 그것도 한국어와 영어로, 한국인을 주 대상으로 한국적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 프로그램 보조일을 하던 그의 여자 친구, 리즈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크리스찬은 고맙게도 나를 생각해냈다. 함께 작업하는 도중 얼핏 내비쳤던 생각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는 이미 나의 웹사이트를 알려주었다며 담당자가 관심이 있으면 연락이 올거라고 했다.

그로부터 몇주 후 반가운 이메일이 왔다. 나는 이력서와 함께 8주짜리 커리큘럼을 마치 준비된듯 보냈다. 미국에서 동양화를 가르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난 ‘이런 수업을 해보면 어떨까’하고 미리 짜놓은 커리큘럼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지는 미처 몰랐었다.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그리고 몇개월 후 난 ‘뮤지엄 에듀케이터’가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꽤 ‘근사한’ 타이틀이었다. 그일을 계기로 뉴욕의 다른 기관들에서도 동양화를 가르치게 되었는다. 나에게 이 기회란 것이 참으로 우습게 찾아온 셈이다.

크리스찬은 콜롬비아에서 온 가난한 아티스트이다. 미국에서의 신분 또한 불투명하다. 비자를 받기위해 학비가 싼 아트스튜던트리그 오브 뉴욕에 등록하고 생활비를 벌기위해 밤낮으로 공사장일이며 건물관리일 등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친구 리즈 또한 페루에서 건너온지 얼마 안되는 이민자이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어도 리즈는 생계를 위해 여기저기서 시시한 일들을 했다. 미술을 사랑하던 그녀는 오히려 보수가 더 낮은 미술계의 인턴직과 가난한 아티스트 남자친구를 얻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행복해보이는 이들은 대다수의 한국사람 눈엔 그저그런 ‘라티노 이민자’일 뿐이다.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근사한 직업을 갖기위한 나의 인맥이었다.

퀸즈뮤지엄은 미국 최고의 다민족 거주지라는 통계자료를 가지고 있는 지역적의 특성을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아트 앤 리터러시 포 뉴 뉴요커’ 프로그램은 뉴욕지역 이민자들을 위한 교양수업인데 이중언어로 동시에 진행된다.

한국어 수업은 올해로 3년째를 맞으며 무엇보다 수업은 무료다. 영어도 한국어도 잘 못해도 나의 수업을 꾸준히 듣고있는 라티노 아줌마, 도리스가 난 참 고맙고 자랑스럽다.

임신한 딸과 함께 사군자를 그리던 제니퍼 모녀도 첫 수업을 진행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힘들고 빡빡한 한주를 보내고 토요일 한가하게 둘러앉은 테이블 주변으론 웃음꽃이 핀다.

어떤 직업을 갖고 있건 간에, 부자거나 혹은 가난하거나 이 시간 만큼은 그저 순수하게 화폭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문화에 이해가 깊은 매니저 호세는 이제 한국 전통책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이 수업들을 진정 의미있게 하는 것은 바로 국적을 초월하고 둘러앉은 수강생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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