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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전세계 미술계 영향력 1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작가들이 아이디어 실현할 수 있게…"난 상황을 창조하는 사람"
미술에 과학·음악·건축 등 접목 시도
비행기·부엌에서도 전시…상식 파괴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42). 일반에게는 매우 생소한 이 사람은 미술가도 아니고 화랑 주인도 딜러도 아닌 큐레이터다.

영국의 미술잡지 '아트 리뷰'가 매년 선정하는 미술계 파워 인사 1위에 큐레이터가 선정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누구인가 어떻게 서양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꼽히게 되었을까. 세계 미술계 최고의 파워맨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2009년 '아트 리뷰' 선정 미술계 파워 100인 중 1위에 올랐다. 무엇이 당신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나?



"그건 아트 리뷰 심사위원들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웃음). 내가 답변해야 한다면 나는 그저 나의 일을 한다는 것뿐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획을 하거나 그들의 생각을 책으로 출판하게 한다거나. 큐레이터로서 나는 작가들을 위해 뭔가 유용한 일을 하고 싶었다. 이런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나는 기쁘고 영광스럽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누차 말해 왔듯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작가들이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미술계가 존재한다."

-큐레이터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큐레이터란 직업은 19세기부터 있었다. 뮤지엄 소장품을 관리하고 보여주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큐레이터의 개념은 매우 확장됐다. 전시는 단순히 오브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시 자체가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즉 큐레이터가 기획하는 전시는 일종의 단기적으로 존재하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20세기 들어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한 비엔날레나 여러 뮤지엄들에서 이루어지는 특별전등이 이런 배경에서 계속 발전해 왔다. 단지 눈에 보이는 오브제가 아닌 무형적인 요소들을 함께 보여주어야 하게 된 것이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큐레이팅의 개념은 더더욱 확장되고 있다.

모든 창조적이고 기획을 요하는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게 되었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큐레이팅 되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각 개인의 행위도 큐레이팅 되어질 수 있다. 조셉 보이스가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고 말한 것처럼 이런 맥락에서 '모든 인간은 큐레이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큐레이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큐레이터의 역할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큐레이터는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해야 하고 적절한 장소를 찾아야 하고 단순히 수평적인 전시가 아니라 수직적인 개념의 전시로 만들어야 하고 끊임없이 기획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큐레이터는 촉매 역할을 하고 행동의 출발점 역할을 해야하고 동기 부여를 하고 작가들의 생각을 실현시키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미술과 삶의 다양한 분야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해야 한다."

-큐레이터에게도 작가들처럼 무언가 창조해 낼 수 있는 '예술가적 기질'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큐레이터와 작가는 근본적으로 역할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주로 전시를 기획하고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을 지휘한다. 그리고 미술과 관련된 집필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 나는 무언가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무언가를 창조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큐레이터는 전문직이 아닌 일반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근본적으로 존경심과 겸손함을 잊지 말고 작가들과 일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언제부터이고 왜 그렇게 생각했나?

"나는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취리히나 바젤 등 큰 도시뿐 아니라 조그마한 도시에 산재한 뮤지엄을 자주 다녔다. 그러다 보니 미술에 푹 빠져 책도 많이 읽었다. 주변에서 예술가도 많이 만났다. 극작가인 이오네스코를 만났을 때가 열네 살이었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나는 '항상 예술과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 페터 피실리와 다비트 바이스(Peter Fischli & David Weiss.스위스 출신의 유명한 듀오 아티스트) 알리기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를 만났는데 그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나의 멘토다."

-보에티의 작품을 비행기에서 전시했던 것이 아직도 회자된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비행기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지 3년 만에 나는 오스트리아 항공사를 설득했고 그 회사에서 전 세계 노선을 여행하는 비행기들에 보에티가 만든 퍼즐 작품을 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것은 파란 하늘을 나타내는 퍼즐이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도 실었다. 한국 사람 중에 그 퍼즐 조각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웃음) 아무튼 이 전시는 미술이 지정학적으로 닿기 어려운 곳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부엌.비행기.수도원.호텔방 등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전시를 해왔다.

"1991년께 알고 지내던 작가들과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럼 부엌이 어떨까?'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우리는 부엌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현실성을 예술 작품이 지니는 현실성과 연결시키고 웅장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은 전시를 의도했다.

이 전시 이후에는 작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가 개인전을 하고 싶어했고 나는 내가 잘 다니던 수도원 도서관을 장소로 제안했다. 당시 볼탄스키의 실험적인 작품들의 전시 허락을 받기 위해 수도승들을 쫓아다니며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1968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2006년 이후 런던의 현대 미술 뮤지엄인 서펜타인 갤러리의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는 파리 모던 아트 뮤지엄(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에서, 1993년부터 2000년까지는 빈 뮤지엄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1991년 이후 200여 개의 전시와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대표적인 전시로 ‘World Soup’(1991), ‘Do it’(1994),‘Cities on the Move’(1997),‘Live/life’(1996), ‘Nuit Blanche’(1998) 등이 있다.
〈 런던=글 최선희 (아트 컨설턴트): 사진 서펜타인 갤러리 노세환 2009 아트바젤 조직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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