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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의 삶속의 미술이야기 63

“까마귀가 나는 밀밭”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마켓에 들어선 순간 코끝 가득 느껴지는 국화 향기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문득 “가을엔 한 떨기 국화꽃이고 싶다…”던 이해인의 “가을에”라는 시가 떠올랐다. ‘가을’이란 이름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문득 화폭에 가을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기를 꺼냈다. 쇼핑을 뒤로 한 채 국화꽃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보며 딸아이는 “예쁘면 사지......”하고 투덜거리면서도 예쁜 꽃들을 내게 골라주었다.

많은 문인들이 가을을 주제로 글을 쓰듯, 미술인들은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가을이 주는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겨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도 화폭에 자연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계절은 자주 나의 그림 속 이야기가 되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을은 유난히 붓을 잡고 싶게 만드는 계절이다.

내겐 로망의 대상이 된 화가가 몇 있다. 처음 유화 붓을 손에 잡았던 고등학교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간 나의 미술세계 한 편에 커다란 스승으로 자리하고 있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이다.

어렸을 때 미술교과서에서 본 고흐의 그림은 그저 인상주의 유화 그림 한 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흐가 누구인지를 알고 난 후부터 나는 그의 그림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그의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전율을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 미술실기 시간,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좋은 날씨를 핑계 삼아 야외수업을 통해 풍경화 작업을 했다. 교정 뒤쪽에는 올리비아와 국화 밭이 있었다. 학생들이 자연 실기장으로 사용되어지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미술반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그림소재 장소이기도 했다. 여름내 빨갛게 불태우다 끝내 시들어가는 올리비아와 각종 파스텔 톤으로 피어나기 시작한 국화들이 가을 햇빛아래 눈부시게 빛나던 날, 나는 꽃밭을 배경으로 풍경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표현한 그림 속의 보라색 하늘을 보고 “야~ 고흐가 이 그림 속에 살아 있네…”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보라색 하늘아래 가득 메워진 자줏빛 올리비아 꽃밭과 그 아래로 노란빛의 국화꽃들이 한 길을 이룬 것을 본 순간 ‘내가 어떻게 이런 강렬한 그림을 그렸을까’하고 스스로 놀랐던 것이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서재에 쪼그리고 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고흐의 화집을 뒤적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부터 내 마음속에 담기기 시작한 고흐의 색은 중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내 화폭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고흐의 노란색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황금색보다는 덜 화려한, 그러나 뭔가 중후함이 배어있는 그의 노란색을 접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소용돌이 쳐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팔짱을 끼는 버릇이 생겼다. 벅찬 가슴을 스스로 껴안고 진정시키는 것이다.

고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표적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노란색 표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언덕길 사이로 바람에 무섭게 흔들리는 밀밭,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들이 닥칠 것 같은 검푸른 하늘, 그 위로 뭔가를 갈망하며 날고 있는 까마귀 떼는 고흐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에서는 이 작품이 고흐가 자살하기 직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알려지면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곧 “고흐의 유서”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처음 파리의 오르세 뮤지엄에서 ‘까마귀가 나는 밀밭’중의 한 작품을 보게 되었다. 그 작품 앞에서 나는 움직이지 못한 채 몇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또 다시 돌아와 장대한 황금빛 밀밭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당시 고흐의 심적 불안감과 자신의 고통을 토해내는 듯 한 붓놀림에서 절규가 느껴지는 듯 했다. 어쩌면 그는 까마귀 떼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꿈꾼 건 아니었을까? 고흐의 마음을 훔치고 싶어 그림 앞을 떠나질 못했었던 나를 기억한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그 그림 앞에 서면 여전히 가슴이 울렁거린다. 아마도 아직 세상에 나의 그림 이야기를 토해내지 못해 답답해하는 마음을 대변한 그림이라 여겨져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고흐의 그림을 생각하면 캔버스에 나의 이야기를 쓰고픈 욕망에 마음이 분주해 진다.

문정(드림아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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