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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칼럼>아름다운 동행

이진희 목사(웨슬리교회 담임)

몇 해 전 친구 목사가 한국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러 왔었다. 오랜 만에 만나서 반갑고 좋았는데, 그 친구가 어딘지 그늘져 보였다. 알고 보니 부흥회를 인도하러 오기 직전 교회 장로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교회를 떠나 부흥회를 하러 왔으니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안양에서 목회하는 친구가 교회 일로 너무 속이 상해 2시간을 운전하고 인천 연안 부두에 가서 혼자 실컷 울다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밤 1시가 넘은 시간에 한강에 나가보면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운다고 한다. 이해가 간다. 이것이 한국 남자들의 현주소이다. 내가 아는 어떤 교수도 1년을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거의 매일 한강에 나가서 울었다고 한다.
<울고 싶어라> 는 노래도 있는 것처럼 목사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미국에는 울고 싶어도 갈 데가 없다. 집에서 화가 나서 식식거리며 나오지만 막상 갈 데가 없다. 교회밖에 갈 곳이 없는 것이 목사다. 교인들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다.

이럴 때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께 /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윤복희 씨가 불러서 유명해진 <여러분> 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를 위로해줄까?”
목사인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를 위로해줄까?

어느 목사님이 개척 교회를 할 때 일이다. 많은 교인들이 모이다가 다 떠났다 그래서 교회를 더 작은 곳으로 이전하고 첫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날 따라 두 아이가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찬송도 크게 부르고 아멘도 크게 하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물었다. “얘들아. 너네들 오늘 뭐 좋은 일 있냐? 찬송도 크게 부르고 아멘도 크게 하고”
“우리라도 그렇게 불러야 목사님이 힘이 나지요.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짜리 아이가 그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많던 교인들은 다 떠나고 그 아이들만이 남았던 것이다. 지금 그 교회는 몇 천 명 되는 교회로 부흥되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을 청빙하게 되었다. 그 교회 수석 장로님이 한 목사님을 추천했는데 다 반대를 했다. 이유는 그 목사님이 피부암에 걸리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장로님이 교인들에게 그 목사님을 모셔야 하는 이유 3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 암에 걸린 목사이니 죽음을 앞둔 목사로서 진실되게 가르치고 설교할 것이다.
두번째, 다른 교회에서 받아 주지 않을 텐데 우리 교회에서 받아 주면 고마워서 얼마나 열심히 목회하시겠는가? 세번째, 죽음을 앞에 둔 목사님이니 사심없이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다바쳐 교회를 섬기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그 교회에서 그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목사님이 있었다. 어느날 낚시를 하는데 저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왜 교회 종을 치지? 생각해보니까 수요일이었다. 저녁 예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수요일인 것을 깜빡 잊고 강태공 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교회로 달려갔지만, 이미 엎이진 물이었다. 결국 그 목사님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목사님 이야기다. 그 목사님이 갓 목사가 되었을 때 교회에서 학생 수련회를 갔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이 목사님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러느라 예배도 빼먹었다. 설교할 목사가 나타나지 않으니 학생들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이 일로 교회에서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그 목사님을 교회에서 내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 장로님이 이렇게 그 목사님을 두둔했다.
“여러분! 그 목사님은 학생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 목사님은 그날 천국의 즐거움에 빠진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인데, 그 장로님이 그렇게 잘못을 감싸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장로님 때문에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그 목사님은 어려운 교회에 부임해서 미국 한인 감리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로 부흥시켰다.

또 이분이 젊었을 때 어느 교회에서 임시 담임목사직을 맡았었다. 임시 담임목사였는데도 담임목사처럼 행동하고 고집을 부렸다. 아직 철이 덜 든 것도 있었겠고 또 그분 성격이 그렇기도 하다.
장로님들이 볼 때 얼마나 가관이었겠는가? 한 장로님이 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왜 이러십니까? 목사님 아버지의 반만 닮았어도 이러지 않을 텐데” 하면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런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되었노라고 하는 간증을 했다. 목사로서 오늘날 이런 교인이 그립다.

1988년에 서울에 있는 한 교회 목사님이 뇌출혈로 쓰러져서 3년 동안 말을 못 했다. 몸은 반신불수가 되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교회 장로님들은 포기하지 않고, 3년 동안 목사님을 병원에 눕혀놓고, 매일 24시간 기도하면서 조를 짜서 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교단에서는 그 교회에 설교 목사를 파송하려고 했지만 교회에서는 결사 반대를 했다. 그 목사님이 반드시 일어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 목사님이 뇌출혈로 쓰러질 때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는 읽어도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해서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갑자기 뇌에서 마치 전기 스파크 같은 것이 일어나면서 잃어버렸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 목사님이 다시 강단에 설 수 있게 되었다. 3년 후에 교회는 6천명 교회로 부흥되게 되었다. 당시 예배당 좌석 수가 600석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설교를 다섯 번, 여섯 번 해야 하니까 교인들이 목사님이 또 과로로 쓰러질까 걱정이 돼서 3천명 들어가는 예배당을 지었다. 목사님이 한 번만 설교 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를 다시 짓는 교회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앞에서 우리 교회에 온 친구 목사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가 부흥회 둘째 날 아침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장로님에게서 교회 일 다 잊어버리고 부흥회 잘 인도하고 돌아오라고 하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일주일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연락이 왔는데, 그 마음을 상하게 했던 장로님이 3시간도 넘는 거리를 운전하고 공항까지 영접을 나왔다고 한다.
“속 썩여드려서 죄송했습니다.” 그 한 마디로 10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것 같았을 것이다. 각박하기만 한 이민 교회에서도 목사와 교인이 이런 아름다운 동행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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