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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자녀양육11> 감사하는 삶편견과 차별대우 극복하기

DBU 김종환 교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아 아이들이 집에 왔다가 각자의 생활과 직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며칠을 지내며 마음의 푸근함을 느끼는 중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기뻤던 일, 속상했던 일, 자랑스러웠던 일, 미안했던 일... 여러 일들이 흑백TV의 영상처럼 생각났다.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자랄 것인가 염려스러운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편견과 차별대우 속에서 삐뚤게 자라지는 않을까 가끔 염려했었다. 나는 지금까지 기독교 학교에서 공부하고 일해왔기 때문에 차별대우를 심하게 당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편견과 차별대우가 이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며 경험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 아이들이 그런 사회와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원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외톨이나 반항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인해 불안하기도 했었다.

내가 이민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다. 유학을 하기로 한 것도 내 선택이었고,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와 살기로 한 것도 내 선택이었다. 혹시 부당한 일을 겪는다 할지라도 내 선택의 결과이니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민자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성장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아닌가. 아이들이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 원망한다면 뭐라고 하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이민 2세, 1.5세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 중에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모난 성격의 반항아들도 여러 명 봤다. 그 친구들은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손해를 보며 자랐다는 이야기를 종종했다. 그들은 분명히 미국시민이었지만 생긴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울분을 토했다. 그래서 귀에 거스르는 말을 들으면 민감하게 자기방어를 하거나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 주변사람들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했다. 내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면 어떻게 하나 염려스러웠다



때로는 편견과 차별대우에 관한 내 지론을 펼침으로써 염려스러운 마음을 아이들에게 드러내기도 했다.

“생김새만 보고 편견을 갖고 차별대우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은 2세만 되어도 주류사회에 완전히 섞이게 된다.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은 아무리 많은 세대가 지나가도 주류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외모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호기심어린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너무 신경쓰는 마라.

“혹시 편견을 가지고 차별대우하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너무 신경쓰는 마라. 문제는
너희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다.” 너희가 동양인으로 태어난 것은 부모의 선택도 아니
고, 너희 자신의 선택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었다. 외모를 보고 편견을 가지고 차별대우하는 사람은 우리의 외모를 하나님이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편견과 차별대우는 실재로 행해지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이 더 많다.” 많은 경우 사
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의미없이 던진 말이나 악의없는 행동이 이민자에게는 편견이나 차별대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더라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 없다.

“편견과 차별대우는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문제이다. 때로는 같은 인종, 같은 나라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편견을 가지고 차별대우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친구들 사이에도 편견과 차별대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사회나 특정한 인종을 원망하지 말고 개인적인 관계의 문제로 받아들여라.

“너희는 친구들보다 두 배로 노력하고, 주어진 것과 처해진 상황에 만족하며 살아
라.” 안된 말이지만 편견과 차별대우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너희가 주류사회의 일원들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노력의 결과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마라.

“너희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것이 아니라 한국인임
과 동시에 미국인이다. 너희 속에서 두 나라의 장점을 살리면 한국사람이나 미국사람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또 너희만큼은 다른 사람들을 편견과 차별대우로 대하지 않도록 노력해라. 그것이 우리 삶에서 편견과 차별대우를 없이하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내 염려가 기우였음을 인해 감사한다. 아이들도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이해하고 그들에 대처하며 성장했다.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남들을 돕는 사회인들이 됐다.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아직도 아이들을 물가에 내어놓은 듯한 심정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염려 이상으로 잘 성장해줘서 기특하고 기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아이들의 미래에 관해 염려하던 그 시간에 기도를 더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내 염려스러운 마음을 토로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생각을 좀더 많이 들어줌으로써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아이들이 올해도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맡은 일에 성실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

DBU 김종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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