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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명당을 찾아서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정신심리클리닉 원장
정평수

나는 여전히 명당을 찾아 헤맨다

봄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져 들어오는 창 아래 나른한 몸을 맡긴 채 우리 집 강아지가 낮잠을 즐기고 있다.’ 저 녀석이 어떻게 명당자리를 알았을까? 옆으로 가서 가만히 누워 보았다. 겁나게 따뜻하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봄이 더디 온다 여겼는데, 뒤뜰 양지쪽에는 벌써 성질 급한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겨울을 이겨 낸 연둣빛 생명이 너무나 기특하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한 영향 때문인지 달라스의 겨울은 예년보다 따뜻했다. 눈도 하루 오다 말았고 땅이 얼어 출근을 못 하는 일도 없었다. 겨울이 겨울 답지 않으니 아쉽기도 하고 몸살을 앓는 지구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는 겨울 추위가 혹독했다. 옷이나 신발, 난방시설이 잘 갖춰지지도 않았고, 생활도 넉넉지 않아 더 그랬다. 하지만 그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네 개구쟁이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한데서 뛰어놀았다. 그러다 지치면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 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저녁때가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여기저기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한 번 두 번 마침내 어머니의 목소리에 화가 실릴 무렵이면 더 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집으로 돌리곤 했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제때 들어와 밥을 먹지 않았다고 어머니께 된통 야단을 맞아도, 추운데 오만 걸 만지며 노느라 손등이 다 터져도 밖에서 노는 게 좋기만 했던 유년의 추억이 아삼삼하다.

우리 가족이 살 집을 두 번 지어 보았다. 풍수지리를 믿는 건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정한 명당의 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집터를 골랐다. 마음에 드는 집터를 선정한 후 그곳에 섰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중요시했다. 얼마나 포근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지 잠시 눈을 감고 느껴보는 것이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집과 황토 위에 집 짓는 것을 선호했다. 집 공사가 끝나 이사를 하고 가구를 배치 할 때도 내 나름의 원칙에 의해 배치했다. 그 모든 것은 환경과 잘 부응해서 마음의 명당을 찾기 위한 행동이었다.

얼마 전 지인의 모친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분은 나를 아들처럼 대해 주셨고 우리 가족에게 많은 정을 주셨던 분이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뵈었을 때 당신 아들과 의형제를 맺어 서로 의지하고 살라는 당부를 하셨다.

얼마후 하관식에 참석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어 장지를 돌아보다가 일군들이
파놓은 묫자리에 고인 물을 펌프로 퍼내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텍사스의 지면이 평평하다 보니 땅을 파면 물이 차는 곳이 많다. 또다시 물이 차겠구나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음지처럼 찬 그늘을 만들었다.

양지는 생명이 움트기에 좋고 따뜻한 반면 음지는 습하고 차갑다.그래서 사람들은 음지보다 양지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이민생활은 돈 많은 부자에겐 해당이 안 되겠지만,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는 새싹을 밀어 올리는 자체가 어려운 음지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옷을 벗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좁아진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독감이나 신뢰보다는 불신과 비판, 이질 문화에 대한 부적응, 언어장벽, 타인종과의 괴리감, 자녀와의 갈등과 부부 문제 등이 음지의 삶이 되는 요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요건들과 맞닥뜨렸을때 헤쳐나가지 않고 주저앉아 있으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음지를 양지로 바꾸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 역시 오랜 세월 음지 탈출을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경디고 살만큼의 내공이 삶 속에 형성되었다. 긍적적인 면에서 본다면 음지의 생활은 세상 사물과 현상을 깊고 진솔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묘판이 되어 주기도 했다. 미국 생활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다. 음지의 내공을 더 쌓아야 하나 싶어 우울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채찍질하곤 한다.

살다 보니 차가운 음지라고 멀리할 수 없고, 따뜻한 양지라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인 듯하다. 조그마한 동산도 음지와 양지를 동시에 품고 있듯, 궂은일이나 좋은 일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균형 있게 적응하며 마음의 내공을 쌓아야겠다.

머잖아 우리 집 뒤뜰에 봄이 찾아올 것이다. 응달진 곳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새싹들
도 초록초록한 빛을 뽐내며 새싹을 밀어 올리고, 야윈 나뭇가지에도 옹골지게 물이 오
르겠지. 올봄에는 가족과 이웃에게 넉넉하고 따뜻한 양지가 되어 주고 싶다. 내 마음의 명당에서 그들이 편할 수 있도록 말이다. 명당을 찾던 삶에서 명당이 되어주는 삶으로 방향을 돌려 볼 생각이다. 마른 땅에도 사람들의 거친 마음에도 삭막한 정치판에도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새봄이 기어이 평화를 불러오기를 바래본다.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정신심리클리닉 원장
정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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